김인권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일본 시즈오카현 야이즈역 앞 상점가 1층에 가면 매우 생소한 간판이 걸려있는 점포를 발견하게 된다. 점포명은 '모두의 도서관 산카쿠'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서점이나 중고 책방처럼 보이지만 이 곳은 근본적으로 개념이 독특하다.

30여평 되는 적당한 규모의 이 '도서관'은 점포 이름처럼 책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책을 무료로 빌려주는 '공공시설'이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회원 가입비 300엔(약 2800원)만 내면 된다. 그 이후로는 1회 5건까지 무제한 무료로 책 대여가 가능한 파격적인 서비스 공간이다.

이색적인 건 책을 빌려주는 주체가 도서관 운영자가 아닌 약 60여개로 나뉘어진 책장 단위 공간을 확보한 '책장 오너'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월 2000엔(약 1만8800원) 또는 연간 2만2000엔(약 20만1000원)을 내고 책장의 일부 공간을 확보한 후 자신이 보유한 책들을 진열하고, 이를 도서관 회원들에게 무료로 대여한다. 오너들은 일정기간 책장 공간을 확보하지만 책의 소유권은 기증 절차를 통해 도서관이 공유한다.

자신이 좋아하고 동경하고 있는 세계를 전혀 모르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감을 느끼고 소통하고 싶은 본능을 절묘하게 파고든 운영 구조다. 60명이 넘는 책장 오너들은 다양한 분야와 장르의 책들을 자신감 있게 책장에 진열해 마니아들 또는 애독자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또한 각 공간마다 '주소'를 부여해 개인 점포의 의미를 담은 명함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인근에서 '시마시마' 커피숍을 운영하는 오너는 커피 관련 전문 서적들을 기증해 진열하면서 명함을 통해 홍보를 한다. 화·수·목요일에는 팝업 매장을 오픈해 회원들에게 커피를 판매하는 스탠드도 운영한다.

펜습자 교실의 선생님을 하고 있는 미키토씨의 경우, 본인 책장에 관련 서적을 전시하고 정기적으로 펜습자 무료 강습 등을 열며 커뮤니티 활동을 진행중이다. 이 밖에도 매니아들이 열광할 만한 희귀한 서적들을 진열해 놓으면 멀리 지방에서까지 방문해 대여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착한 '도서관'을 설립한 사람은 올해 서른을 갓 넘긴 도히 준야(土肥潤也)라는 젊은이다. 그는 다양한 형태의 커뮤니티 및 그 공간들을 만들어 나가는 목표를 갖고 실천하는 사단법인 '토리나스'를 대표하고 있다. 이 도서관은 그 첫번째 프로젝트다.

도히 대표는 대학원 시절 독일 뮌헨 지역의 공원을 방문했을 때 행정기관이 아닌 시민들이 공원관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자신들의 공원이니까 스스로 운영한다고 하는 의식이 당연시되는 것에 놀라고 감동했다. 이를 계기로 스스로 운영하는 도서관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처음에 책장 오너를 모집하기 위해 취지를 알릴 때만 해도 사기꾼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공감대 확산에 애를 썼다. 이후 클라우드 펀딩을 통해 목표금액의 160%를 달성하며 총 10명의 오너를 확보했다. 이 후 이 유니크하고 미래지향적인 콘셉트가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불과 3개월만에 모든 책장 오너들이 결정됐다. 이제는 오너가 되려면 취소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가 폭발적이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은 야이즈역 앞에 비어 있던 상가 중 9개 점포가 이 도서관을 중심으로 재오픈하면서 주변 상권까지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산카쿠 도서관은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지금은 멀리 홋카이도까지 확산되며 50여 곳이 문을 열고 오너들은 2000명을 넘어섰다. 사단법인 특성상 프랜차이즈 형태가 아닌 운영 노하우와 브랜드를 무료로 공유하는 공공개념으로 확대시키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인구가 감소함에 따라 사회적 공공 시설들을 정치가나 행정가에 맡기기에는 한계가 있다. 시민적 공공권, 즉 시민이 대등하게 정치나 사회에 대해서 대화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 아래 '사설공공'(社設公共)을 추구하는 사단법인을 만들고, 그 첫번째 과제로 '모두의 도서관'을 만들어낸 일본의 한 젊은이의 두번째, 세번째 꿈들의 성공을 격하게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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