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불법이민자 단속·추방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위대의 주축은 멕시코계 주민들입니다. 세대를 이어 미국 사회의 일부로 살아온 그들은 침묵하지 않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혐오의 시선 속에서도 자신들의 뿌리와 존재를 부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죠. LA 시위 현장에서 그들이 높이 든 멕시코 국기는 조상의 역사와 이민자 공동체의 연대를 상징하는 깃발이 됐습니다.
LA 다운타운의 연방 구금센터 앞에서 엘리자베스 토레스(36)는 멕시코 국기를 높이 들었습니다. 조부모가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는 그는 "나는 자랑스러운 미국인이다. 동시에 멕시코 형제자매들과도 연대해야 한다"면서 멕시코 국기를 든 이유를 말했습니다. 그의 말은 시위대의 공통된 정서를 대변합니다.
CNN과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시위에서 멕시코 국기가 단순한 상징물을 넘어 저항과 연대의 상징으로 떠올랐다고 전했습니다. 멕시코 국기가 추방의 표적이 된 이민자들과 연대하고, 혈통의 '뿌리'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낸다고 짚었습니다.
원래 캘리포니아는 멕시코의 영토였지요. 1848년 미-멕시코 전쟁에서 패배한 멕시코는 현재의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광범위한 영토를 미국에 넘겼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멕시코계 주민들이 그대로 그 땅에 남게 되었지요.
특히 LA 지역은 멕시코 문화가 깊게 자리한 곳입니다. 20세기 들어 LA는 급속한 도시 성장과 산업화를 겪으며 건설, 농업, 서비스업 분야에서 값싼 노동력을 필요로 했습니다. 이 시기에 멕시코에서 온 이민자들은 합법·불법을 막론하고 저임금 노동자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후에도 가족, 지인들을 초청하는 연쇄 이민이 이어졌습니다.
인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LA 카운티에는 멕시코 출신 또는 그 혈통이 340만명 이상 거주하고 있습니다. 크리스 제페다 밀란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UCLA) 교수는 시위대에 대해 "그들은 이민자의 자녀 및 손자"라며 "부모와 조부모가 어디서 왔는지를 부끄러하지 않겠다는 당당한 선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멕시코 국기를 든 시위대의 모습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 강경파의 눈에는 불편한 장면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멕시코 국기를 흔드는 시위대를 '폭도'라고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LA 시위를 '외적에 의한 침공'으로 규정, 강경한 대응을 이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육군 기지인 포트 브래그에서 진행한 연설에서 "그들은 동물이다. 다른 나라의 깃발을 자랑스럽게 들고 다니지만 성조기는 들고 다니지 않는다"면서 "우리는 LA를 해방하고 자유롭고 깨끗하며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JD 밴스 부통령도 지난 8일 엑스(X·옛 트위터)에 "외국 국기를 든 폭도들이 이민 단속 요원들을 공격하고 있다"라고 적었습니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9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시위대를 "외국 국기를 흔들며 폭동을 일으키고 불법 침입자를 추방하려는 연방 법 집행을 방해하는 외국인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한편 LA 시위는 다소 누그러진 양상이지만 샌프란시스코, 뉴욕, 시카고 등 다른 주요 도시로 집회·시위는 확산하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수천명이 모여 집회를 열었고, 뉴욕에선 미드타운 맨해튼에 있는 트럼프 타워 주변에서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하다 최소 9명이 체포됐습니다. 전국적인 시위는 이번 주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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