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는 어떻게 현실을 바꾸는가

브라이언 애터베리 지음 / 신솔잎 옮김 / 푸른숲 펴냄


상상력과 환상적인 요소가 가미된 이야기나 예술 작품을 뜻하는 '판타지'(fantasy)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마법사와 용, 주문과 예언, 불가능한 일이 벌어지는 역사적인 공간과 존재한 적이 없는 미래 공간…. 책은 세계를 드러내고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비현실의 문학 장르인 판타지에 대한 현대적인 탐구다.

오랜 시간 판타지와 SF(공상과학) 분야에서 활동한 미국의 대표적인 판타지 문학 연구자인 저자는 판타지를 '진실을 말하는 거짓말'이라고 표현한다. 다른 어떤 장르보다 인간의 본성과 세계의 작동 방식을 꿰뚫어 본다는 것이다. 판타지는 이에 그치지 않고 현실과, 그리고 작품 바깥의 독자와 상호 작용하며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인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저자는 '판타지가 어떻게 의미 있을 수 있는가', '판타지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라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지며, 우리를 판타지 문학의 세계로 초대한다. 진실성, 사실주의와의 관계, 장르에 따른 결말의 특징, 작품에 흥미를 더하는 메타포, 신인 작가들이 기존의 세계관을 전복하는 방식 등 아홉 가지 관점으로 판타지 문학의 의미와 역할을 밝혀나간다. 또한 '어스시' 시리즈의 어슐러 K. 르 귄, '반지의 제왕'의 J. R. R. 톨킨 등 대표적인 판타지 작가부터 현시대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들의 흥미로운 작품까지 방대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이 과정에서 판타지 문학이 지닌 사실적인 측면이 돋보이고, 판타지가 제시하는 더 나은 대안이 드러나며, 판타지가 어떻게 정치적인 도구가 될 수 있는지 밝혀진다.

저자는 판타지가 진실이 될 수 있는 세가지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판타지는 신화 차원에서 진실이 될 수 있다. 신화는 우주를 설명할 뿐 아니라 집단, 계층, 젠더의 역할, 의례와 종교적 의무까지 보여주는 전통적인 신념이자 내러티브다. 사람들은 세계와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신화에 의지했고, 이러한 신화는 대개 판타지의 바탕이 된다. 둘째, 판타지는 메타포 차원에서 진실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작품에 등장하는 용은 진짜 용이 아니라 독재자를, 동물과 의사소통하고 싶은 우리의 욕구를, 해일이나 화산 폭발같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을 의미할 수도 있다. 셋째, 판타지는 구조 차원에서 진실이 될 수 있다. 사실주의가 사회와 자아의 '형태'를 묘사하는 데 뛰어나다면, 판타지는 표면적인 정확도를 포기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내면과 세계의 숨은 '구조'를 묘사하는 데 탁월하다. 필립 풀먼의 '황금나침반'에는 '데몬'이 등장한다. 데몬은 정령이라는 신화적 전통에 셰이프 시프터(변신하는 능력을 가진 존재)가 더해진 것으로, 이들은 반려동물처럼 보이지만 사실 인간의 자아와 연결된 인공 기관 같은 역할을 한다. 작품은 다른 존재로 분산돼있는 자아의 구조를 통해, 자아가 한 사람의 피부 너머로 뻗어 나가 다른 생명체를 침범할 수 있다는 진실을 드러낸다.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는 익숙치 않은 방식으로 진실을 보여주는 판타지는, 때때로 우리 삶에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인 변화를 일으키며, 그 자체로 하나의 대안이 되기도 한다. 저자에 따르면 판타지는 낮은 형태가 아니라 높은 형태의 예술이다.

강현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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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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