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가 연예인들에겐 공포로 다가가고 있다. 선거 때마다 피해 연예인이 나타나서다. 그 정도가 점점 심해져 앞으로 선거 스트레스로 인한 눈치 보기가 극심해질 전망이다.
이번 선거 때 가장 큰 피해자는 걸그룹 에스파의 카리나였다. 선거 직전에 여느 때처럼 SNS에 일상 사진을 올렸는데 그게 문제가 됐다. 옷에 빨간색 숫자 '2'와 빨간색 줄무늬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빨간 장미 이모티콘도 있었다. 이에 대해 '장미 대선'을 맞이해 특정 후보 지지 메시지를 낸 것이라는 해석이 등장했다.
말이 안 되는 억측이다. 아이돌은 작은 언행도 큰 논란으로 비화할 수 있기 때문에 돌출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더구나 카리나처럼 팀의 일원인 사람은 다른 팀원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매사에 조심하는 게 체질이 돼있다. 아이돌 논란은 회사 차원에서도 엄청난 손실을 초래한다. 그 모든 걸 무릅쓰고 정치 메시지를 냈다면 카리나가 정치에 앞뒤 안 가릴 정도로 대단히 깊게 몰입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평소에 정치적 언행을 했을 텐데 전혀 그런 징후가 없었다.
논란이 터지자 카리나는 해당 사진을 바로 삭제하며 정치적 해석을 차단했다. 이런 점을 미루어보면 옷 색깔이나 숫자는 우연의 일치로 추정된다. 선거 때 그런 사진을 올렸다는 것은 오히려 카리나가 정치와 거리가 매우 멀어 선거에 대한 인식이 희박했다는 점을 말해준다.
그런데도 국민의힘 한 당협위원장이 카리나가 삭제한 사진을 다시 올리며 응원글을 게시해 논란을 키웠다. 정치인이 나서면 카리나의 정치적 이미지가 짙어진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억측일 가능성이 높고 카리나 본인이 아니라는 데도 이후 카리나에 대한 정치적 의미 부여가 계속 이루어졌다.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대변인이나 보수 성향 강사인 전한길도 카리나 응원글을 올렸다. 보수 성향 온라인 채널의 대문 이미지가 카리나 사진으로 교체되기도 했고 보수 성향 연예인인 JK 김동욱도 정치적 게시물에서 카리나를 언급했다. 이럴수록 카리나 논란은 커져갔고 피해도 커졌다.
그녀는 단지 일상 사진 한 장을 올렸을 뿐인데 정치적으로 해석되며 황당한 일을 당한 것이다. 이렇게 연예인 사진 속의 색깔, 손 모양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이번 카리나 사건처럼 지지(?)한다는 쪽에서 찬사를 보내는 건 예외적인 모습이고, 보통은 해당 색깔의 반대 진영에서 집단 비난에 나서서 일이 커진다.
과거 유재석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유재석이 선거 때 파란색 모자를 써서 두고두고 비난 받았었다. 그 모자는 유재석이 그 전에도 착용했던 일상 아이템이고 흔한 디자인의 일반적인 모자였는데도 사람들은 거기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며 비난했던 것이다. 가수 송가인도 파란색 의상을 입었다가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배우 한지현은 '난 하늘색이 잘 어울리나 보다'라고 썼다가 비난을 받고 사과까지 해야 했다. 배우 조보아는 손 하트 모양이 특정 숫자를 떠올리게 한다며 비난 받았다.
그 후에도 유사 사건이 끊이지 않아 문제가 됐었는데 이번 선거 때 그런 논란이 잦아들기는커녕 오히려 심해졌다. 카리나 논란뿐만 아니라 가수 신지는 과거 사진 속 손 모양이 특정 후보 홍보에 이용돼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방송인 홍진경은 개인계정에 다섯 장의 일상 사진을 올렸는데 그 중 한 사진 속 상의가 빨간색인 게 문제가 됐다. 비난이 잇따르자 그녀는 "이 민감한 시기에 제가 이렇게 어리석은 잘못을 저지르다니 저 스스로도 진심으로 어처구니가 없다"며 사과했다. 크리에이터 랄랄도 빨간색 옷을 입은 사진 때문에 "빨간색 옷 입었다고 커뮤니티 난리인데 절대 무엇을 지지하거나 정치적으로 보이려 한 사진이 아닙니다"라고 해명해야 했다.
왜 일상 사진을 올린 일로 사과하고 해명까지 해야 하는지 어처구니가 없다. 정치적 메시지를 내기로 작정한 연예인들은 분명하게 입장을 밝힌다. 그렇지도 않는데 사진 한 장을 놓고 정치적 꼬리표를 붙이는 건 과도하다. 이러니 연예계에 선거 공포분위기가 번지는 것이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기획사와 연예인은 사진 한 장, 모자 하나, 손 모양 하나에도 극심하게 긴장한다. 아예 흑백사진을 올리거나, 주먹을 쥐거나, 억지로 빨간색 파란색 균형을 맞추며 눈치를 보기도 한다. 언제까지 이런 공포 분위기를 이어갈 것인가? 이젠 단편적인 사진 한 장에 과잉 의미를 부여하며 정치적 풍파를 일으키는 악습은 근절하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