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형사7부(이재권 부장판사)가 9일 헌법 84조에 따라 오는 18일로 예정됐던 이재명 대통령의 파기환송심 기일을 변경하고 추후지정키로 결정했다. 기일 추후지정(추정)은 기일을 변경, 연기 또는 속행하면서 다음 기일을 지정하지 않는 경우를 뜻한다. 이렇게 되면 이 대통령 재임 기간 중 해당 파기환송심 재판은 열리지 않게 된다. 서울고법의 이번 결정으로 서울고법의 위증교사 사건 항소심, 서울중앙지법의 대장동·백현동·위례신도시 개발 비리 및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사건, 수원지법의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과 법인카드 유용 사건 재판 등 다른 4건의 재판부도 유사한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이 대통령 재임기간 중 모든 형사재판은 안 열릴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법조계를 중심으로 재판을 받는 피고인이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헌법 84조가 적용되느냐를 놓고 거센 논란이 있어왔다.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訴追)를 받지 아니한다'고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규정하고 있는데, '소추'의 개념에 현재 진행 중인 형사재판이 포함되는지를 두고 명확한 해석과 판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고법의 이날 결정은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에 진행 중인 형사 재판도 포함된다고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법의 재판 중단 결정은 사법부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긴 것으로, 사법부 독립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대통령이 되도 재판을 계속 진행해야 한다는 민심에도 반한다. KBS·MBC·SBS 등 지상파 방송 3사가 지난 3일 대선 당시 전국 17개 시도 투표소 60곳에서 투표자 5190명에 '만일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공직선거법 파기환송심 등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은 결과, 응답자의 63.9%는 재판을 계속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민주당 지지자들 가운데서도 '재판 계속'은 42.7%로, '재판 중단' 44.4%와 거의 비슷했다. 서울고법의 결정은 자칫 권력이 있으면 죄가 없다는 '유권무죄'로도 비춰질 수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원리 중 하나인 법앞의 평등은 국민 누구나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차별을 받지 않는 것이다. 법원이 이 원칙에 위배되는 결정을 내린다면 법치주의와 사법부의 신뢰는 땅에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헌법 84조와 관련해 '불소추'는 대통령이 재직 중 새로운 기소를 당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기존에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까지 중단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게 적지 않은 헌법학자들의 해석이다. 헌법 84조에 대해선 대법원이 명확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검찰은 서울고법의 이번 결정에 대해 즉각 항고해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서울고법이 재판을 사실상 무기한 연기했는데도 여당인 민주당은 재판부 판단에 맡기면 곤란하다며 대통령 당선시 진행 중인 형사재판을 정지하도록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을 예정대로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심지어 검찰이 기소 자체를 취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민의힘은 "대통령 임기 초반 권력이 무섭다는 이유로 사법부가 스스로 항복 선언을 한 셈"이라며 "권력의 바람 앞에서 미리 알아서 누워버린 서울고법 판사의 판단은 두고두고 사법부 흑역사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사법부 독립은 스스로 지켜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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