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수 디지털콘텐츠국 국장
6·3 대선은 9년 전인 2016년 20대 총선과 이어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건의 판박이다. 사건의 전후 관계와 주연 인물만 바뀌었을 뿐, 전체 플롯은 변한 게 없다. 보수 정당의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나란히 임기 중 중도 하차한 채 진보 정당의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에게 권력을 헌납하는 뼈아픈 수모를 당한 것도 똑같다.

싸움에도 맥락이 있다. 운 좋게 이기는 싸움이란 없다. 적의 급소만 정확히 가격하는 전문 싸움꾼을 맥없이 주먹만 휘둘러대는 아마추어가 어찌 이길 수 있을까. 누가 이기고, 질지는 안 봐도 승패가 훤히 보인다.

승리의 공식을 아는 자는 어떻게 싸워야 할 지를 잘 안다. 반면, 자신이 왜 졌는지를 모르는 자는 영원히 필패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마련이다. 이번 선거 유세 중 국민의힘이 대선 후보를 김문수 후보에서 한덕수 후보로 교체하려 한 것을 두고, 당시 이재명 후보가 "정치는 우리가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가만히 있으면 상대방이 자빠지고, 그럼 우리가 이기는 것"이라고 한 건 상대를 경시해서만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박근혜 정부 몰락의 서막을 연 20대 총선을 돌아보자. 당시 보수 분열 속에 이전투구하던 새누리당은 친박(친 박근혜) 비박(비 박근혜) 세력 간 싸움에다 진박(진짜 친박) 싸움까지 벌였다. 그것도 모자라 '유승민 공천'을 둘러싼 눈꼴 시린 편싸움과 '옥새 파동'까지 일으켰다. 이런 '개 싸움' 같은 추태에 질려버린 대구·경북의 전통적인 지지자들은 물론 수도권 중도 보수층까지 등을 돌렸다.

대드는 경쟁자가 눈 앞에 있는데도 총을 거꾸로 들어 아군을 쏴대는 '못된 버릇'도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정치는 상대와 나를 구별하는 데서 시작한다. 하지만 9년 전 새누리당이나 그 후신인 국민의힘은 피아 구분을 못한다. 국민의힘에는 외부의 적이 없다. 적도 없고, 동지도 없다. 오직 '나만의 이득'을 위해 죽자살자 피 터지게 싸워 승리를 쟁취해야 할 내부의 반대파만 있을 뿐이다.

민주당이 '함포 부대'라면 국민의힘은 각개 전투를 벌이는 '소총수'다. 어느 한 의원이 싸움에 휘말리면 시민단체를 비롯한 온 나라의 좌파 진영에서 대포를 쏴댄다. 국민의힘은 이런 대군과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한다. 도와주는 동료도, 측면 지원할 저격수도 안 보인다. 그래서 보수는 한심한 '모래알 조직'이다. 적에게 쥐어박혀도 한데 뭉쳐서 싸우질 못하고, 괜히 당내 동지들에게 화풀이를 하곤 한다.

반면 좌파는 싸움꾼이다. '광우병 파동', '세월호 참사' 등 정치적 싸움거리를 만들어 내는 데도 능수능란하다. 좌파 진영의 어느 한 사람이 공격 받으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힘을 다해 보호한다. 한 사람이 외롭게 당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국민은 보수 정당에 '6·3 대선의 패배'의 치욕을 안겼다. 김문수 후보의 득표율을 놓고 선방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한가한 해석으로 보인다. 이번 대선에서도 내부 총질과 헛발질에 신물이 난 수많은 중도 보수층이 차갑게 등을 돌렸다. 평소에 보수를 자처하던 이들 중에서 "이럴 바엔 차라리 이재명 후보를 찍고 말겠다"는 이들도 상당수 있었으니 말 다했다.

하루아침에 야당으로 전락한 지도부도 붕괴 일보 직전이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사퇴를 선언했고, 임이자·최형두·최보윤 비대위원과 김상훈 정책위의장도 일괄 사의를 밝혔다. 사실상 와해 수순을 밟고 있는 셈이다. 그런 데도 정신 차리기엔 한참 멀었다. 대선이 끝난지 며칠이나 됐다고 당권 다툼의 못된 버릇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전멸 상태에서도 힘이 남았는지, 내부 총질도 열심이다.

보수의 위기다. 그것도 자초한 위기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힘 지지자들 중 상당수가 지지를 거두고 돌아섰다. 다른 정당의 후보가 좋아서도 아니고, 정치적 신념이 바뀌어서도 아니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국민의 지지를 받을 만한 일을 해서도 아니다. 답은 명확하다. 국민의힘은 꼴도 보기 싫어졌다는 것이다. 싸울 의지도 없이 '먼저 자빠져 버린' 국민의힘. 차라리 '보수 정당' 포기 선언을 하라. 디지털콘텐츠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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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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