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등기

잉마르 베리만 지음 / 신견식 옮김 / 민음사 펴냄


잉마르 베리만(1918~2007)은 '제7의 봉인', '산딸기', '화니와 알렉산더' 등 고전을 넘어 전설이 된 수많은 작품을 연출한 스웨덴의 영화감독이다. 20세기의 영화 문법을 혁신하면서 새로운 미학의 지평을 연 베리만. 이 거장의 예술적 뿌리는 어디에서 자라났고, 그의 삶과 작품 이면에는 어떤 고통과 그림자가 웅크리고 있었을까.

책은 베리만의 자서전이다. 그는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유했지만 가정 환경은 좋지 않았다. 엄한 아버지는 쉽게 매를 들었고, 어머니는 늘 우울했다. 부모는 자주 싸웠고 베리만은 사랑을 갈구했다. 그를 구해준 것은 영화였다. 어린 베리만은 설탕 상자 위에 시네마토그래프를 올려놓고는 등유 램프를 켜고 하얀 벽에 빛을 쏜 후 필름을 걸었다. 그러면 세상은 고요해졌고, 불안은 잠잠해졌다. 할머니와 함께 매주 영화를 보고, 삼촌이 만들어준 환등기를 만지작거리며 영화라는 '마법의 세계'에 점점 깊이 빠져들었다. 후에 베리만은 영화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영화감독이 됐다.

그러나 평지풍파도 많았다. 삶은 자주 뒤집혔고 그 틈 사이로 고통과 혼란이 스며들었다. 책에는 여러 차례의 이혼, 탈세 의혹, 그의 페르소나라고 해도 무방한 배우 리브 울만과의 사랑, 창작이 고갈되어가는 말년의 불안 등 그가 겪은 좌절과 실패, 그리고 간혹 등장하는 승리의 기록이 페이지마다 새겨져 있다.

한때 절판됐던 이 자서전은 24년 만에 '정본' 번역으로 되살아났다. 우리는 빛과 어둠 사이에 선 사나이, 잉마르 베리만의 필름 속으로 다시금 걸어 들어간다. 이는 우리에게 여전히 낯설고도 깊은 울림을 준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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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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