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가 끝났다. 전국 곳곳의 투표소에는 국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후보 선택의 이유는 달라도 "새 대통령이 나라를 잘 이끌어주길 바란다"는 마음만큼은 하나였다. 투표 과정에서 일부 크고 작은 돌발 상황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차분하고 질서 있게 진행됐다.
이번 조기 대선을 '만들어준' 당사자 윤석열 전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씨 부부도 투표에 참가했다. 이들은 3일 오전 서초구 서초동 자택 인근 초등학교에서 투표했다.
눈에 띄는 장면은 이들 부부의 환한 표정이었다. 윤 전 대통령의 표정은 그야말로 해맑았다. 조기 대선의 빌미를 제공한 비상계엄 선포의 당사자가 지을 수 있는 표정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헌법재판관 전원일치의 파면 결정으로 대통령에서 물러난 자가 가져야 할 일말의 죄책감도, 미안함도 엿보이지 않았다.
조기 대선은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에게는 불행이었다. 탄핵으로 대통령이 물러나는 사례 자체가 충격이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정해진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탄핵을 당해 물러난 것도 비극인데, 그로 인해 실시되는 선거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미소 지으며 투표소에 들어가는, 파면된 전직 대통령 얼굴을 보고 있자니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
헌정 질서를 문란케한 사람이 가져야 마땅할 책임감 자체가 엿보이지 않는 분이 일국의 대통령씩이나 했다고 생각하니 이 나라의 운명이 참으로 기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윤 전 대통령의 죄는 결코 가볍지 않다.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던 시대착오적인 비상계엄도 어이가 없지만, 국가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져 헌법과 법률에서 규정한 요건도 따지지 않고, 비상계엄을 선포한 행태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갉아먹는 일탈이었다.
무엇보다 윤 전 대통령은 자신을 선출한 국민들을 배신했다. 지난 대선을 마치 자신의 힘만으로, 자신의 능력으로 일군 성과인 냥 연합세력을 모두 저버렸다. 불과 0.73%포인트에 불과한 근소한 표 차이로 당선된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권력을 휘둘렀다.
2022년 대선 막판에 안철수 의원과 단일화를 하면서 공동정부 운운했지만 결국 지키지 않았다. 대통령이 되자 안 의원을 나몰라라하며 권력을 사유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민의힘 당 대표로 선거 승리에 일조했던 이준석 의원도 끌어내렸다. 이 의원은 개혁신당을 창당했고, 윤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세력은 분열했다.
윤 전 대통령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 부부와 자녀의 부정입학 등으로 인해 실망한 국민들을 배신했다. 공정을 외치며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자신의 부인 김건희씨와 관련해서는 철저하게 불공정했다. 또한 야당과 협치하겠다는 약속을 철저하게 뭉갰다. 나아가 더불어민주당의 일부 문제를 일반화해 반국가세력으로 몰아가는 작태도 서슴치 않았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관용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윤 전 대통령은 지지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국민을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이태원 참사와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모두에 대해 구체적인 사과는 없었고, 오히려 그 책임자들을 감싸는 데 앞장섰다. 그 결과 2024년 총선을 앞두고 박빙의 싸움을 압도적 패배로 만들어내며 국민의힘을 패망의 길로 이끌었다.
최종 기착지가 '희대의 막장극'인 비상계엄 선포였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피 흘리며 쌓아온 민주주의 역사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퇴행이었고, 국민들의 자존심을 훼손하는 행위였다. 그런 윤 전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의 영향력을 과신하며 자기만의 가상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듯 하다. 투표소로 향하며 환하게 웃는 윤 전 대통령의 모습은 연민마저 상실케했다.
6월 4일 이후 들어설 새 정부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자명하다. 대한민국 헌정사에 부끄러운 역사를 추가한 윤 전 대통령에 대해 철저히 책임을 묻는 일이다. 이를 통해 역사의 교훈이라도 남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