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외국인 노동자 인권 상담의 '대부' 한윤수 목사의 회고록이다. 그는 60세 이전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60세에 목사 안수를 받은 후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무료 상담을 시작했다. 지난 18년간 상담을 하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리해 떼인 돈을 받아준 게 무려 236억원 정도다. 그 대가는 화려한 명예도, 안정된 삶도 아니었다. 11평 아파트에 살며 재활용품을 주워 생활했다. '가난하지만 떳떳하게' 살아낸 하루하루였다.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고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친구였다. 자식들도 훌륭하게 키워냈다.
그는 왜 60세에 이런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했을까? 그 이전에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회고록은 그의 말대로 "그동안 완전히 망했고, 고되게 일해 온" 이야기다. 원래 회고록 집필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한 번 써 봐. 너의 인생이 만만한 인생이 아니잖아"라는 지인의 말에 용기를 냈다. 어느 인생인들 만만한 것이 있겠느냐만은 한윤수의 인생을 들여다 보면 어떻게 이런 세월을 견뎌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책은 일반적인 회고록과는 다르다. 장황한 수식도, 영웅적 포장도 없다. 비극의 서사도, 자기 연민의 고백도 아니다. 한윤수 식의 유머와 비속어가 그대로 살아 있는 '맨살 같은 기록'이다. 한 편 한 편이 독립적인 65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어, 마치 다큐멘터리 같은 에세이를 읽는 듯하다.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다. 인생의 굴곡을 희화화하듯 풀어내지만, 그 문장 안에는 삶의 심연보다 깊은 아픔과 단단한 자존이 함께 녹아 있다. 그래서 책을 읽어갈수록 어느새 마음이 숙연해지고,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회고록이 이렇게 맛깔나고도 뭉클할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표현을 써서 대단히 죄송하지만, 솔직히, 별 지랄을 다 하고 다녔다. 이거 보통 미련한 사람이 아니면 못 한다. 일단 심술과 고집이 세고 악질이어야 한다. 물론 나는 거기에 최적화된 인간이었다. 어려서부터 부모 말을 안 들었고, 선생님한테도 고분고분하지 않았으며, 군대나 회사에서도 윗사람 말을 안 듣고 반항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 40년을 버틸 수는 없다. 꾸준히 세월을 끌고 갈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나는 그것이 연민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불쌍한 사람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그의 회고록은 단순한 '삶의 기록'을 넘어, 오늘의 한국 사회에 던지는 묵직한 질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공공의 책임보다 사적 이익이 앞선다. 약자를 대변하는 목소리는 희미해지고, 헌신은 조롱받는 세태다. 바로 그 지점에서 '한윤수'라는 이름은 빛난다.
그는 광야에서 거친 세월을 걸었지만 누구보다 인간답게, 고집스럽게, 그러나 유쾌하게 버텨냈다. 그의 삶은 '성공'과는 거리가 멀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 반짝인다. 책장을 덮고 나면 우리는 알게 된다. 이토록 낮고 작고, 그러나 단단한 생이야말로 우리 마음을 오래 지켜줄 진짜 희망이라는 것을. 박영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