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31일 회송용 봉투 접수 과정과 투표함 보관 등을 살피기 위해 서울 성동구선거관리위원회를 방문, 사전투표 관리 등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31일 회송용 봉투 접수 과정과 투표함 보관 등을 살피기 위해 서울 성동구선거관리위원회를 방문, 사전투표 관리 등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9~30일 이틀간 전국에서 실시된 21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에선 적지 않은 소동이 일어났다.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날 것으로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선관위의 '주먹 구구' 투표 관리가 문제였다. 2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에선 투표용지가 외부로 반출되는 일이 발생했다. 투표소 출입구에서 생중계 방송을 하던 한 유튜브 채널에는 시민들이 투표소 밖에서 투표용지와 회송용 봉투를 들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관외 선거를 위해 대기하던 일부 선거인은 대기 줄이 길다는 이유로 투표용지를 받은 채 식사하고 돌아왔다. 또 서울 강남구 대치2동 사전투표소에선 남편의 신분증으로 투표용지를 발급해 대리투표를 마친 후 5시간여 뒤 자신의 신분증으로 투표한 선거사무원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경기 부천 신흥동 투표소와 김포 장기동 투표소에서는 22대 총선 투표용지가 투표함에서 발견되고, 회송용 봉투에서 이미 기표된 용지가 나오기도 했다.부정선거를 주장해온 황교안 대선 후보 측은 부산 금정구 장전1동 사전투표소의 경우 선관위 발표 투표자 수가 오전 6시부터 9시까지 3시간동안 210명으로 투표참관인이 계수한 투표자 수 64명의 거의 3배라며 선관위 측에 해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정도라면 총체적인 부실이다. 선관위는 지난 대선 때는 소쿠리와 쇼핑백에 투표용지를 담아 나르는 어처구니 없는 행태를 보여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또 광범위한 채용 부정으로 질타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이 모양이다. 차제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전투표제를 없애고 본투표일을 하루에서 이틀이나 사흘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법관이 선관위원장을 겸임하는 선거관리 체제에 대한 개혁도 요구된다. 선관위원장인 법관이 고발하거나 검사가 기소한 선거사범은 법원이 죄의 유무를 판단한다. 자기가 고발한 범죄피의자를 자기가 재판하는 구조인 것이다. 이는 수사·소추기관과 재판기관을 분리하는 근대 이후의 형사사법 원리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중앙선관위는 1948년 국회 산하기관으로 설치됐다가 1960년 3·15 부정선거를 계기로 독립적인 헌법기관이 됐다. 선관위가 민주화에 어느 정도 기여한 건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지난 65년간 외부 감시나 감사를 전혀 받지 않으면서 방만한 선거 관리는 물론 세습 채용 비리 등 '비리의 온상'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선관위는 상근직원만 약 3000명인 비대한 조직이다. 선거가 없는 해에는 특별히 하는 일이 없다. 스웨덴, 노르웨이 등처럼 선거위원회는 정부 통제 아래 둬 평소 선거 정책 등을 담당케 하고, 선거 관리는 지자체가 책임지는 식으로 조직을 분리·축소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 하다. 감사원 등 외부 직무 감찰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투표의 공정성과 투명성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근간이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대법관)은 "관리상 미흡함이 일부 있었다"며 "유권자 여러분께 혼선을 빚게 한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선관위는 문제가 발생할때 마다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말로만 끝낼 일은 아니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부추길 수 있는 선관위의 엉터리 투표 관리는 맹백한 직무유기로 반드시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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