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 논설실장
고대 그리스에서 탄생한 민주주의는 인류가 발명한 훌륭한 정치체제이지만 단점도 있다. 철학자 플라톤이 지적한 것처럼 '중우(衆愚) 정치'의 위험성이 그것이다. 주권을 가진 시민(국민)들이 무지몽매해 올바르지 못한 선택을 할 경우 민주주의는 오히려 국가와 공동체에 독이 된다. 대중의 타락이 초래하는 정치와 국가의 추락이다.

그래서 일찍이 플라톤은 조국 아테네의 끔찍한 혼란과 전쟁속에 '가장 뛰어난 자'(호이 아리스토이·hoi aristoi)의 리더십을 갈구했다. 이상적 국가 실현에 필요한 철학과 정치권력이 한몸이 된 철인(哲人) 정치다. 플라톤은 철인 정치가 무너지면 금권 정치, 과두(寡頭) 정치, 중우 정치가 나타나고 끝내 극단인 '더 강한자의 이익이 정의가 되는' 참주정과 폭정(티라니·tyranny)이 나타난다고 했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국민들의 자발적 선택으로 히틀러라는 폭정이 탄생한 것을 2300여년전 예언한 것과 마찬가지여서 놀랍다.

철인 정치는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면 엘리트에 의한 정치다. 플라톤은 철인 정치가 이상적 국가의 실현에 필수적이라고 했지만 오늘날 현실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대중의 타락' 반대편에 '엘리트의 타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동체에 끼치는 해악은 대중보다 머리 좋은 엘리트의 타락이 오히려 더 크다. 타락한 정치 엘리트는 역사의 간신(奸臣)처럼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세상 인심을 노련하게 파악하고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에 능하며, 사람을 잘 구슬리고 분위기를 살펴 말하는 재주가 뛰어난 게 특징이다.

영국의 정치가이자 역사학자인 액튼 경(Lord Acton)은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고 했다. 옛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소련)이 레닌 혁명 이후 겨우 70여년만에 막을 내린 건 타락한 정치 엘리트의 절대권력이 부패로 무너진 대표적 사례다. 현대 중국의 경우도 비슷하다. 1970년대말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25명 안팎으로 구성되는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의 엘리트들에 의해 움직여왔다. 엘리트 주도의 국가 운영은 국가 개발 초기 나라가 가진 자원의 전략 분야로의 집중 투입 등에 있어 효율적일지 몰라도 민간의 창의와 인간의 자유 의지를 짓밟으면서 결국은 실패로 끝나기 마련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아무리 부패 척결을 외치더라도 고위층의 부패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견제받지 않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절대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할 수 밖에 없어서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문턱을 넘어 선진국 입구에 도달한 대한민국은 불행히도 현재 '중우'와 '부패한 정치 엘리트'라는 두가지 악재를 모두 가진 갈림길에 서 있다. 정치권력의 부패가 '팬덤'으로 대표되는 '중우'와 맞물려 지금까지 본적 없는 정치 양상이 펼쳐진다. 타락한 정치권력은 입으로는 국가 발전과 민생을 외치지만 그 속내는 개인적 이득의 극대화가 유일한 목표다. 이런 상황에 깨어있고 비판적 지식을 가진 국민들은 다가온 대선이 만에 하나 히틀러나, 망상에 사로잡혀 비상계엄이라는 극단적 수단을 동원한 미몽의 권력을 재탄생시키는 게 아닌가 두려워한다.

동양 정치철학의 원류로 꼽히는 서경(書經)과 대학(大學)은 정치 엘리트에 '수신제가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요구했다. 먼저 자기 자신을 닦고 집안을 가지런하게 한 다음,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하게 한다는 뜻이다. 개인의 수양 없이 국가 경영은 불가했다. 조선 왕조가 경연제(經筵制)를 두고 하루에 세번씩 임금과 신하가 모여 공부하고 국정에 머리를 맞댄 건 한 나라의 리더가 그 나라의 흥망을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치 엘리트에만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책임이 있는 건 아니다. 물이 배를 띄울 수도, 전복시킬 수도 있는 것처럼 국민들도 국가의 흥망에 책임이 있다. 대선이 하루 앞이다. "내란 처벌"인가 "총통 독재 출현 저지"인가. 민주주의와 진보는 개인의 자유와 인격, 독립의 고양이 핵심이다. "천하의 흥망은 필부에도 책임이 있다"(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고 했다. 하늘이 내린 재앙은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만든 재앙에선 살아날 수 없다. 투표를 똑바로 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하는 올바른 지도자를 뽑는 것, 그게 필부의 책임이다. 논설실장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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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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