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포퓰리즘 공약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재명 후보의 농어촌기본소득, 아동수당 확대,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등을 비롯하여 김문수 후보의 각종 감세정책 등도 재원 마련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 없이 제시된 포퓰리즘 공약이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선거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으로 끝난 경우가 많다. 국민들도 무리한 공약을 실천하려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다행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선 공약은 대통령 임기 내내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 심지어 같은 당의 차기 대선 후보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러므로 대선 공약은 신중해야 하며, 실천 가능해야 한다.
특히 포퓰리즘 공약,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저당잡히는 공약은 대한민국 전체를 나락에 빠뜨릴 수 있다. 한때 포퓰리즘 정책으로 국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얻었던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어떻게 되었는가?
그의 쿠데타 및 독재 정치는 논외로 하더라도 그는 경제적으로는 석유 등의 국가자원을 국유화하고, 이를 복지 확충에 투입함으로써 국민적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그 결과 국가 경제 기반이 약화되었고, 장기적으로 베네수엘라 경제를 완전히 파탄에 빠뜨림으로써 국가부도 사태를 초래하였다. 이러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은 남미 포퓰리즘의 대표적 실패 사례로 꼽힌다.
경제 상황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장기적 전망 없이 오로지 국민들의 복지 혜택만 확충함으로써 지지를 얻는 것은 결코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을 베네수엘라의 사례는 잘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한때 베네수엘라를 배워야 한다는 주장이 제법 많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마찬가지로 포퓰리즘과 민주주의의 차이점, 포퓰리즘의 심각한 위험성에 대해 잘 모르는 국민들도 많다. 포퓰리즘은 오로지 국민 다수의 지지로 모든 것을 정당화시키는, 민주주의의 타락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오래 전에 링컨이 말했듯이 민주주의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여야 한다. 그런데 포퓰리즘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어내기만 하면 무조건 정당하다고 말한다. 즉,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한 경우에도 국민의 이름을 앞세우고, 국민들에게 피해가 될 정책들을 강행하는 것이다. 그것이 경제적인 후퇴이건, 국가부도이건….
인류 역사에서 포퓰리즘의 위험성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었던 것은 히틀러가 이끌었던 나치 정권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남미의 다양한 포퓰리즘도 그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세계 각국에서 포퓰리즘이 재등장하는 것은, 그리고 대한민국에서도 선거 때마다 포퓰리즘 공약들이 주목받는 것은 지속가능성이 없는 정책임을 간과하고 눈앞의 이익에 현혹되기 때문이다.
이는 빚을 내서 당장을 풍족하게 보냈지만, 그 빚을 평생 힘겹게 갚아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민주국가라고 하더라도 정부가 국민들에게 베푸는 것은 결코 공짜일 수 없다. 결국 국민의 세금에서 일부 베푸는 것이거나, 더욱 위험한 것으로는 국가의 미래를 저당잡히고 빚으로 베푸는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포퓰리즘 정책은 독이 든 사과와 다르지 않다. 겉으로 보기에는 먹음직스럽지만, 먹고 나면 탈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선거를 앞두고 모든 것을 거는, 속된 말로 악마와 계약해서라도 대선 승리만 하면 좋겠다는 후보들은 국민들에게 독사과를 맛있는 사과라고 제공하고, 자신도 그 사과를 함께 먹는다. 결국 함께 망하는 것도 불사하는 것이다. 혹은 자신의 위장에 대해 특별한 자신감이 있을 수도 있지만….
독의 강도에 따라 탈이 나는 정도에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포퓰리즘은 무조건 독사과다. 이런 독사과를 국민들이 왜 먹는가? 당연히 그것이 독사과임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국민들은 독사과의 후유증에 대한 경계심을 확실히 가져야 한다. 모든 후보들이 독사과를 제공한다면, 적어도 어떤 독이 탈이 적은지라도 평가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가장 먹음직스러운 독사과가 가장 탈이 크다는 점도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