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나다의 상징적 국가 원수인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캐나다를 방문하면서 캐나다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평소라면 무심했을 시민들은 "폐하 만세"를 외쳤고, 군주제 폐지를 주장했던 사람들조차 환영 일색입니다. "캐나다는 미국의 51번째 주(州)가 돼야 한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주권 위협'에 대한 반작용으로 풀이됩니다.
찰스 3세는 커밀라 왕비와 함께 지난 26일(현지시간) 캐나다 수도인 오타와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서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와 25명 의장대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찰스 3세는 이후 오타와 공원에서 지역 사회 단체와 만남을 가졌으며, 지역의 거리 하키 대회에서 첫 번째 퍽을 떨어트리는 행사 등에 참여했습니다. 오타와 시내에는 환영 인파가 몰려들었습니다.
국왕을 보기 위해 온 시민 노먼 맥도널드는 AP 통신에 "찰스 3세가 오타와에 온 것이 자랑스럽다"면서 "캐나다는 구매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전까지는 군주제 폐지를 지지했다는 조지 모나스티리아코스 역시 "이런 순간에는 우리는 모두 군주제 지지자"라면서 "찰스 3세의 방문은 역사적 순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우리 주권에 대한 위협을 고려했을 때 찰스 3세의 방문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갖은 주권 위협으로 미국에 대한 반감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이튿날인 27일 찰스 3세는 영국 국왕으로서는 48년 만에 캐나다 의회 개원을 알리는 '왕좌의 연설'(The Speech from the Throne)을 했습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및 합병 위협을 비판하는 언급을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독립 주권 국가로서 캐나다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부각했습니다.
찰스 3세는 연설에서 "캐나다는 오늘날 또 다른 중대한 순간을 맞고 있다"며 "민주주의와 다원주의, 법치주의, 자결권, 자유는 캐나다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이며 정부가 반드시 보호하겠다고 다짐하는 가치들"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비록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지난 수십 년간 캐나다인들에게 번영을 가져다준 개방적 글로벌 무역 체제가 변화하고 있다"며 "동반자 국가들과 캐나다의 관계 역시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찰스 3세는 "많은 캐나다인이 주변의 급격히 변화하는 세상에 대해 불안과 우려를 느끼고 있다"며 "근본적인 변화는 항상 불안감을 조성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캐나다에 올 때마다 캐나다의 일부가 조금씩 더 내 혈관 속으로 스며들면서 곧바로 내 마음으로 전해진다"며 "캐나다는 선한 세력으로서 그 행동과 가치관으로 세계에 모범을 보이는 일을 계속해왔다"라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영국 '킹스 스피치'를 영국 정부가 작성하는 것처럼, 이날 찰스 3세의 '왕좌의 연설'은 대부분 내용을 캐나다 정부가 작성했습니다. 다만, 발언 내용에 대해선 찰스 3세가 책임을 집니다.
AFP 통신은 영연방 국가인 캐나다에서 그간 군주제에 대한 지지는 급격히 줄어드는 추세였지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의 51번째 주 병합' 발언 등 여러가지 주권 위협을 거치면서 자라난 반미 여론의 영향으로 상황이 반전됐다고 전했습니다. 오타와 시민 크리스티나 리스는 AFP에 찰스 3세의 방문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당신은 단지 우리만 상대하는 것이 아닌 영연방 소속의 56개국 모두를 상대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캐나다 시민들은 여전히 군주제가 구시대적인 식민 시대의 유산이라며 국왕의 방문에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몬트리올 출신의 로렌스 웰스는 AFP에 "이번 방문이 트럼프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정말로 영국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는 것이냐"고 되물으면서 군주제는 현실에서 동떨어진 구시대적 유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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