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동현 IT바이오부 기자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누구나 아는 말이다. 신뢰는 현대 사회와 경제의 기반이자 모든 구성원들에 요구되는 덕목이다. '높으신 분'부터 이를 어긴다면 그곳의 앞날은 안 봐도 비디오다. 요새 표현으론 안 봐도 유튜브라나.

100조원이란 큰돈이 왠지 친숙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유력 후보들이 큰소리 친 인공지능(AI) 분야 공약 때문이다. AI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세상이 바뀌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들이 관련 공약을 앞세운 것은 반가운 일이다. 다만, 현실성이 떨어져 신뢰가 안 간다는 게 문제다.

양대 정당의 대선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각각 10대 공약의 첫 번째, 두 번째로 AI 3대강국(G3) 도약을 내걸며 모두 100조원 규모 AI 투자를 약속했다. 이 후보는 국부펀드를 결성하고 모태펀드를 활용해 이를 충당한다는 구상이다. 김 후보는 정부와 글로벌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민관합동펀드로 이를 마련한다는 생각이다.

우리 정부의 한 해 예산이 670조원 안팎이다. 정부가 민간과 함께 모태펀드로 지난 20년 동안 조성해온 누적 금액도 약 44조원 수준이다. 100조가 선거용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뭔가 뾰족한 수가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후보들이 제시한 재원 조달 방안인 '정부재정 지출구조 조정분, 연간 (세수) 총수입 증가분으로 충당'이나 '국비 활용, 민간 및 글로벌 기업 투자 유치'는 대체로 희망사항에 가깝다.

100조로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윤석열 정부에 이어 AI G3 도약을 너도나도 목표로 삼지만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여느 기술과 제품이 그렇듯 AI도 잘 만드는 것과 잘 쓰는 것은 다를 수 있다. 또 모델과 서비스, 반도체 같은 인프라도 각각 다른 영역이다. 자원이 넉넉지 않은 우리나라로선 매 순간 선택과 집중이 요구될 수 있다. 리더의 비전과 계획이 절실함에도 대선 후보들에게서 이를 찾아보긴 어렵다.

지지도 조사에서 현재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 후보의 경우 최근 TV 토론에서 AI 데이터센터의 주요 전력원으로 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앞세워 논란이 인다. 재생에너지 전환은 언젠가 가야할 길이지만 당장은 AI로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다. 글로벌 IT리서치 가트너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올해와 내년 2년 동안 데이터센터 전력소비량이 160%까지 증가, 2027년까지 기존 AI 데이터센터의 40%에서 전력가용성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됐다.

가트너는 "풍력, 태양광과 같은 재생에너지원은 전력 생산이 불가능한 기간이 존재해 항시 전력이 필요한 데이터센터엔 적합하지 않다"며 "현재로선 수력, 화석연료, 원자력만이 중단 없이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고 밝혔다. 때문에 지난 2월 프랑스에서 열린 AI 정상회의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글로벌 AI 기업들을 대상으로 자국의 원전 경쟁력을 어필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따지자면 거꾸로 가려는 셈이다.

대선 후보들의 AI 공약에는 일단 되고 나서 생각하자는 냄새가 풍긴다. 한때 우리나라가 인터넷을 기반으로 IT 강국이라 자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지도자의 비전과 리더십, 그에 따라 계획을 수행한 관계자들의 헌신이 있었다. 소프트웨어(SW) 생태계와 무형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척박하므로 AI 강국으로 가는 길은 그보다 험난해 보인다. 국민 신뢰마저 흔들리면 표류하기 십상이다.

요즘 세계는 말 그대로 난세다. 지정학적 갈등이 고조되고 자국우선주의가 팽배한다. 글로벌 흐름에 유연하고 기민하게 대응하면서 한편으론 국력을 키우는 데 어느 때보다 매진해야 할 시점이다. 여기엔 이미 세계적 화두로 자리한 AI도 포함된다. 지도자부터 AI를 마케팅 용어처럼 쓰고 만다면 한국은 당장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AI 관련해 공부와 고민을 거듭하는 지도자가 우리나라를 이끌어나가길 바란다.

팽동현기자 dhp@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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