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나세르 병원에서 이스라엘 공습으로 숨진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습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23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나세르 병원에서 이스라엘 공습으로 숨진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습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23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 이 곳 나세르 병원 응급실에 불에 심하게 그을린 아이들 시신 일곱구가 한꺼번에 들어왔습니다. 소아과 여의사 알라 알 나자르(38)씨는 그 시신들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순간, 무릎이 꺾였습니다. 나자르씨가 병원에 근무하느라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3살부터 12살에 이르는 아이들이 집에서 잠을 자다 사망한 것이죠. 24일 아침까지 계속된 공습으로 생후 7개월 아기와 두살배기 아이도 잔해에 깔려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나자르씨는 그렇게 자녀 10명 중 1명만 남기고 모두 잃었습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11살 아들 역시 중상을 입었고, 남편 역시 크게 다쳐 현재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CNN 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가자 보건부는 역시 의사인 나자르씨 남편도 근무를 마치고 귀가하자마자 집이 폭격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무니르 알바르시 가자 보건부 장관은 엑스(X·옛 트위터)에 "야히아, 라칸, 라슬란, 게브란, 이브, 라이벌, 세이든, 루크만, 시드라 등 자녀 9명이 사망했다"며 "이것이 가자지구의 우리 의료진이 견뎌야 하는 현실"이라고 적었습니다.

단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 대부분을 잃은 나자르씨는 그러나 병원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을 잃은 후에도 계속해서 병원에서 일했다고 동료가 전했습니다. 가자 보건부 관계자는 자신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나자르씨가 인내심을 유지한 채 현재 벌어지는 일을 받아들이는 듯한 눈빛으로 서 있는 것을 봤다고 CNN에 말했습니다.

유엔이 "가자 지구는 더 이상 병원이 아닌 무덤이 되고 있다"고 표현한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나자르씨의 사례가 웅변합니다. 실제로 3개월 가까이 이어진 이스라엘의 봉쇄로 가자지구에서는 식량과 물, 연료, 의약품이 부족해지고 기근에 대한 공포도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최근 일부 구호물자 반입을 허용하기는 했지만, 구호물들은 턱없이 부족한 수준입니다. 그 결과 가자지구 봉쇄가 시작된 이후 약 80일간 가자지구에서 영양실조 사망자는 총 58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의약품 부족 등에 따른 사망자도 242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렇게 가자지구가 지옥으로 변하자 유럽과 아랍권 20여개 국가들은 스페인 마드리드에 모여 가자전쟁 종식을 위해 이스라엘을 동반 압박하고 나섰습니다. 25일 가자전쟁 중단을 위해 마련된 '마드리드 그룹' 장관급 회담에는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권 국가는 물론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같은 유럽 국가들도 함께 했습니다.

특히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역사적 과오로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지해온 '맹방'인 독일도 이번 회의에 처음으로 참여했고,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한 스페인과 노르웨이, 아일랜드, 슬로베니아에 이어 브라질 등도 함께 전쟁 중단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이 자리에서 호세 마누엘 알바레스 스페인 외교장관은 국제사회가 가자전쟁을 멈추기 위해 이스라엘에 대한 제재도 주저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에 무기 금수 조치를 취하고 '두국가 해법'을 영원히 망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 대한 개별 제재도 배제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등 개인에 대한 제재도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미국도 이스라엘에 가자지구에 대한 대규모 지상 침공을 미뤄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미국은 이스라엘이 전면전에 나설 경우, 가자 점령지역에서 철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이는 휴전 전망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습니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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