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 탄소중립은 이제 선언이 아니라, 산업 구조를 근본부터 재설계하는 기준선이 되었다. 우리 정부도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달성하기 위해 전환, 수송, 산업, 건물, 농축수산 등 산업군별 감축 경로를 수립한 바 있다. 해양수산부 역시 해운, 항만, 수산어촌 등 5대 분야에서 2050년까지 총 324만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문제는 이 가운데 가장 높은 감축률(96%)이 설정된 수산어촌 부문이 정작 정책의 중심에서 비켜나 있다는 점이다. 구조 설계도, 계측 시스템도, 이행 로드맵도 없이 수치만 제시된 현재 상황은 '빈 구조 위의 숫자'에 가깝다. 수산업은 여전히 온실가스 정책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으며, 동시에 아직 활용되지 않은 전략 산업이기도 하다.
수산업은 이미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놓여 있다. 고수온은 양식 생물의 대량 폐사를 초래하고, 해수온 상승은 어종 분포와 어획 패턴을 바꾸고 있다. 더 심각한 위기는 이 산업 전반의 에너지 흐름이 수치화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선, 양식장, 냉동 창고, 가공 공장, 유통망, 폐기 과정까지 모든 단계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를 하나의 탄소 흐름으로 보지 못하고 있다.
연간 약 167만 GJ의 연료를 소비하는 어선은 어획물 1톤당 약 1.17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분석이 있다. 양식장도 연간 수십만 kWh의 전력을 사용하며, 냉동 및 가공 시설까지 포함하면 산업 전반의 에너지 소비는 상당하다. 그러나 이 모든 활동은 아직까지 국가 온실가스 통계에서 명확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 수산업은 정책 회계의 '블라인드 스폿'에 놓여 있다.
국제사회는 수산업의 탄소전환을 전략적으로 다루고 있다. EU는 수산 부문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2% 감축했고, 일본은 해조류·갯벌 등의 탄소 흡수량을 국가 회계에 반영하는 블루카본 제도를 제도화했다. 일부 국가는 어선 탄소 라벨링을 도입하고, 배출권 거래를 통해 발생한 수익을 다시 산업 내로 환원하는 순환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수산업을 자연 생태의 일부로만 간주하며 정책의 주체로 삼지 못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감축 목표가 아니라, 실제 작동하는 설계 체계다. 우리나라 수산업의 탄소 흐름을 산업의 운영 언어로 재구성해야 한다. 이를 위한 전략은 세 가지 방향에서 출발할 수 있다.
첫째, 정밀 계측 기반의 감축 시나리오를 구축해야 한다. 수산업 전반의 배출량을 정량화할 수 있는 'K-FISH GHG' 산정 시스템을 마련하고, 어선 유형, 어업 방식, 양식 형태, 지역 조건에 따라 세분화된 인벤토리를 구축해야 한다. 농업 분야는 이미 IPCC 기반 산정 기준이 마련돼 있으며, 일부는 감축 정책 수립과 평가에 활용되고 있다. 수산업 역시 동일한 과학적 기반 위에서 감축 경로를 설계해야 한다.
둘째, 장비 중심에서 시스템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스마트 양식장, 냉동 유통망, 폐기 시스템이 기술적으로는 발전했지만, 이를 하나의 운영 체계로 통합하는 디지털 플랫폼은 부재하다. AI 기반 탄소 추적, 연료 최적화, 생애주기 탄소회계 등 디지털 도구를 활용한 운영 전환이 시급하다. 장비가 아니라 흐름을 설계하고 통제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셋째, 수산업의 탄소 흡수 기능을 제도화해야 한다. 정부는 2050년까지 136만톤의 블루카본 흡수량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수산업 내 기여도는 아직 불분명하다. 해조류, 바다숲, 갯벌의 탄소 흡수 기능을 온실가스 회계에 반영하고, 복원 사업과 지역 산업을 연계하며, 흡수 활동에 대한 인증과 인센티브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지금까지 수산업은 '생산량'이라는 가시적 성과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탄소중립 시대의 산업은 '얼마나 덜 배출했는가', '얼마나 많이 흡수했는가'라는 보이지 않는 흐름을 설계하는 능력으로 평가받는다. 수산업은 이제 생산성과 지속가능성을 함께 설계해야 하는 산업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