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빚을 지면 안된다는 무식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가 인천 유세 중 한 말이다. 경제 대공황 시절, 케인스 경제학에 바탕을 둔 미국의 뉴딜 정책을 연상시키는 이 주장은 사실 그의 기본 입장이기도 하다. 경기도지사 시절 정부가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때, 경기도는 추가 부채를 져가며 두 번 지급했고, 지금도 지역화폐나 농어촌 기본소득 지급 등 대선 공약의 기본 철학을 형성하고 있다.
물론 적자재정 편성으로 경기를 활성화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 대책일 뿐, 늘 빚을 질 수는 없다. 이 후보의 치명적 문제는 재원 마련 대책 없이 상시적으로 나라가 빚을 지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모두 "무식한 소리"하는 사람으로 몰아친다. 누가 무식한지 한 번 따져 보자.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4월 '재정점검 보고서'에서 2025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을 54.5%로 전망했다. IMF가 선진국으로 분류한 37개국 중 비기축통화국 11개 국가 중 한국은 4위에 올랐다. 비기축통화국이란 자국 통화가 국제적으로 널리 쓰이지 않는 국가를 말한다. 비기축통화국은 상대적으로 재정건전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보고서에서 우리보다 부채비율이 높은 국가는 싱가포르, 이스라엘, 뉴질랜드 뿐이었다. 싱가포르는 세계의 금융허브로 정부부채 비율이 177%에 달한다. 그런데, 이는 실제 정부부채가 아니라 싱가포르 투자공사의 투자채권 발행이 회계상 부채로 잡혔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전쟁 중이어서 정부부채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특수 상황이다. 결국 우리는 주요 선진국 중 정부부채 비율 2위로 매우 높은 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부부채 비율의 상승 속도다. 국제결제은행(BIS)에 의하면 2000년 9월부터 2024년 9월까지 한국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9%에서 45.3%로, 24년 사이에 5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이번에 무디스가 신용등급을 강등한 미국은 51.1%에서 107.4%로 약 2.1배 증가하는데 그쳤다. 한국은 정부가 책임질 비영리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부채도 급증하고 있고, 군인연금과 공무원연금 등 공적연금 지급 보전을 위한 재정지출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18년까지 약 600조원 수준이었던 정부부채는 문재인 정부에서 '큰 정부'를 지향해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을 약 30만명 늘려 인건비 부담이 커졌고,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1000조원 대로 크게 늘었다. 물론 자영업자의 어려움 속에 가계부채도 크게 늘어 2025년 3월 기준으로 약 1928조7000억원 수준이다. 이 후보의 말과 달리 국가가 빚을 내 지출했어도 정부부채와 함께 가계부채도 급증한 것이다.
채무가 늘어도 갚을 능력이 있으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린 초 저출산으로 세금을 낼 사람 수가 급격히 줄어드니 지금 국가채무를 줄이지 않으면 미래 세대에게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를 떠넘기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국가채무 증가를 경고하고 있다. 그래도 이것이 "무식한 소리"인가.
우려되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지난 경제분야 대선후보 토론에서 원자력 발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이 후보는 후쿠시마와 체르노빌 사고를 거론하면서 "원전 그거, 위험한 것 아니에요?"라고 반문했다. 시간이 부족해 더 이상 토론은 이어지지 못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부활을 보는 것 같아 섬찍했다. 원전이 그렇게 위험하다면 왜 미국, 영국은 물론, 사우디 등 산유국들조차 원전 건설을 추진할까. 한국 원전의 안전도는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데도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사람의 입에서 원전이 위험하다는 말이 나왔다면 그 원전을 누가 사려 할 것인가.
국가채무를 걱정하는 전문가의 말을 '무식한 소리'로 매도하고, AI시대 청정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는 원전을 '위험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재명 정부'에서 이 나라의 미래가 어찌될 지 걱정이다. 이 후보에게 이런 걱정은 또 하나의 "무식한 소리"일 뿐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