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기치 못한 상황에 라마포사 대통령은 당황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정상회담 주제를 벗어난 공방을 주고받았다. 대형 모니터까지 준비해 트럼프 대통령이 튼 영상에는 남아공의 급진 좌파 정당 경제자유전사(EFF)의 줄리어스 말레마 대표가 집회를 이끄는 장면과 트럼프 대통령이 '백인 농부 1000명이 묻힌 곳'이라고 주장하는 장소를 향해 이동하는 차량 행렬 등이 담겼다.
말레마 대표는 영상에서 대형 운동경기장에서 수만 명이 모인 가운데 춤을 추며 '보어인(네덜란드 이주민)을 죽이고, 농부들을 죽이자'라는 구호를 외친다. 그러나 내용이 지나치게 잔인하고 자극적이어서 증오 발언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아프리카너(Afrikaners·17세기 남아공에 이주한 네덜란드 정착민 후손)의 이익단체 아프리포럼은 이 구호 사용을 금지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은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인종차별정책) 시절 백인 정권에 저항하는 흑인들의 구호에서 비롯된 상투적인 표현이라는 이유로 이를 기각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이 영상을 보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소수 정당 대표의 주장일 뿐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과는 완전히 배치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군중 앞에서 춤까지 추면서 특정 집단을 저렇게 죽이자고 선동하면 보통은 빨리 체포되기 마련"이라고 지적하자 라마포사 대통령은 "남아공 헌법은 다당제를 보장한다"고 해명했다.
동행한 연정 파트너인 민주동맹(DA) 대표이자 백인인 존 스틴헤이즌 농업부 장관도 "저런 급진 정치인이 정부 청사에 앉아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지 못하도록 연정에 참여한 것"이라며 거들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백인 농부 1000명이 매장된 곳'이라고 지목한 영상 속의 장소에 대해 라마포사 대통령은 "처음 보는 장면"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어디인지 아시느냐"고 묻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도중 백인 희생자 관련 기사를 출력한 종이 뭉치를 라마포사 대통령에게 통째로 건네기도 했다.
이 장면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굴욕을 안겨줬던 지난 2월 백악관에서 있었던 일을 연상시킨다. 외신은 '리얼리티쇼'를 방불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외교가 세계 각국 정상의 당혹감을 키우고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과 미 레거시 미디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연출'이 보수우파 지지층을 의식한 '국내용'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제기한다. 해외의 '백인탄압' 의혹에까지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하는 모습을 연출해 자신의 지지 기반인 백인 노동자 계층 등에 소구되는 메시지를 발신한다는 평가다. 이규화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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