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의 에너지 자원개발 자회사 SK어스온이 동남아시아의 주요 산유국인 인도네시아에서 유망 광구 2개곳을 낙찰받았다.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에 이어 인도네시아까지 진출하며 동남아시아 '빅3' 산유국을 모두 아우르는 클러스터링 전략의 퍼즐을 완성한 것이다.
이번 성과는 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이 1980년대부터 강조해 온 '무자원 산유국' 철학과 이를 계승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뚝심 있는 해외 자원 확보 전략이 결실을 맺은 또 하나의 상징적 사례로 평가된다. 인도네시아 지역에서의 업스트림 분야의 투자 확대를 지속적으로 검토 중인 만큼 자원 개발에 더욱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SK어스온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발주한 '2024 제2차 원유·가스 자원개발 사업 경쟁입찰'에서 자바섬 인근의 세르팡과 말루쿠 제도 인근의 비나이야 광구를 각각 낙찰받았다고 22일 밝혔다. 확보한 두 광구는 각각 약 8500㎢로 서울시 면적의 14배에 달하는 대규모 해상 탐사권역이다.
◇2개 유망광구 낙찰·생산물분배계약 체결= 지난 20~22일에는 인도네시아 석유·가스 산업 전시회 'IPA 컨벡스 2025'에서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 바흘릴 라하달리아 에너지광물자원부 장관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인도네시아 석유·가스 관리청과 2개 광구에 대한 생산물분배계약도 체결했다. 광권을 공식적으로 확보한 것이다.
세르팡 광구는 인도네시아 자바섬 북동부 지역에 있는 해상 탐사광구로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유망한 유전 지역으로 분류된다. 일부 외신은 세르팡 광구 전체의 미발견원시부존량이 원유 12억배럴, 가스 6조3000억입방피트에 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SK어스온은 세르팡 광구 지분 14%를 갖고, 말레이시아 국영석유회사인 페트로나스와 일본 최대 자원개발 회사인 INPEX가 각각 51%, 35%씩 지분을 보유한다.
비나이야 광구는 인도네시아 동부 말루쿠 제도 인근 해상 탐사광구로 동인도네시아 지역에서 신규 탐사 활동이 가장 활발한 지역에 위치해 있다. 전체의 미발견원시부존량이 원유 67억배럴, 가스 15조입방피트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SK어스온은 해당 광구 지분 22%를 확보했으며, 페르타미나와 페트로나스 지분이 각각 56%, 22%씩이다.
SK어스온은 향후 3년 간 2개 광구에서 지질 분석과 탄성파 탐사 등 탐사 작업을 거쳐 시추 가능한 구조를 발굴해 낼 계획이다. 탄성파 탐사는 인위적으로 탄생파를 발생시킨 후 지하 지층 경계면에서 반사·굴절돼 되돌아온 파동을 측정해 지층의 물리적 특성을 분석하고 지하자원을 찾는 방법이다.
◇동남아 클러스터링 본궤도=이번 인도네시아 진출로 SK어스온은 동남아 자원개발의 전략적 삼각축인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잇는 '동남아 에너지 클러스터링 전략'을 완성하게 됐다. 이는 베트남 15-1/05 광구 원유 발견 이후 한 달 만에 연이은 낭보다.
SK어스온은 지난 1~4월 베트남 15-2/17 광구와 15-1/05 광구에서 연이어 원유를 발견했다. 이 광구들은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원유와 가스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쿨롱 분지에 위치해 있어 높은 상업성이 기대된다. 말레이시아 지역에서도 2022년 사라왁주 해상에 위치한 SK427 광구 운영권을 획득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SK427 광구 권역 내 케타푸 광구 운영권까지 확보해 탐사와 개발에 나서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동남아 석유·가스 자원 부국으로서 '기회의 땅'으로 부상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지역에서 업스트림 분야의 투자 확대를 지속적으로 검토 중이다. SK어스온 외에도 SK이노베이션 E&S는 인도네시아 석유·가스 관리청과 CCS(탄소 포집·저장) 공동 연구를 통해 한-인니 간 국경 통과 CCS 사업 관련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무자원 산유국'의 꿈·43년 이정표= 이번 인도네시아 광구 확보는 단순한 사업 확장을 넘어 SK그룹의 창업정신이자 최종현 선대회장이 천명한 '무자원 산유국' 철학이 43년 만에 동남아 심장부에서 또 다시 실현되는 역사적 순간으로 평가된다.
1970년대 석유 파동을 겪은 최종현 선대회장은 "자원을 확보하지 않으면 국가 차원의 문제가 된다"며 1982년 자원기획실을 설립해 해외 자원개발에 처음 나섰다. 북예멘 마리브 광구에서 석유 개발에 성공한 1984년을 시작으로 1994년 북 자파라나, 1999년 베트남 15-1, 2003년 페루 8광구 등지에서 연이어 상업적 생산에 성공하며 한국을 '준산유국' 반열에 올려놨다.
이 같은 도전들은 최태원 회장으로 계승됐다. 최 회장은 남미 아마존을 비롯해 세계 각국 오지까지 몸소 찾아 다니며 '자원부국'의 꿈 실현을 위한 자원개발 사업에 열정을 쏟았다.
최태원 회장은 '한 기업의 결실은 10년 이상 걸린다'는 신념으로 연간 1조원 안팎의 자원개발 투자를 단행했다. 이는 2007년 베트남, 2008년 콜롬비아, 2010년 페루 액화천연가스 프로젝트 등 6개 광구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SK어스온 관계자는 "이번 인도네시아 광구 진출로 중국과 베트남, 말레이시아를 아우르는 동남아시아 자원개발 클러스터링 전략 지도를 완성했다"며 "그동안 페루와 베트남에서의 자원개발 성공 경험 등을 토대로 인도네시아 또한 유망 자원개발 지역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박한나기자 park27@dt.co.kr
SK어스온의 인도네시아 광구 위치도. SK어스온 제공.
지난 21일 인도네시아 ICE에서 열린 인도네시아 석유·가스 산업 전시회 'IPA 컨벡스 2025'에서 김경준(왼쪽에서 세 번째) SK어스온 기획사업지원실장이 세르팡 광구와 비나이야 광구의 생산물분배계약을 체결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SK어스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