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 대기자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해도 서러워 말지니. 차라리 그 속 깊이 간직한 오묘한 힘을 찾으리."

오월의 초원은 한없이 마음의 나래를 펴게 한다. 시인은 '한때 빛나던 초원의 빛, 꽃의 영광'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음을 슬퍼하면서도, "남아 있는 것들로부터 힘을 얻으리라" 했다. 아름다웠던 시절에 머물지 않고, 그 기억을 품은 채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초월적 태도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겐 그 황홀한 빛의 향연을 즐길 수만은 없으니…. 대통령 선거 국면을 보며 우리가 누렸던 영광이 사그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우리는 과연 시처럼 관조하고 초월할 수 있을까.

한때 대한민국은 '초원의 빛'이자 '꽃의 영광'이었다. 1960년대 산업화를 시작으로 민주주의를 이룩하고, 오늘날 제조업 세계 5대 강국이 되기까지 우리는 숱한 고난을 딛고 일어섰다. 자원은 없었지만 국민의 근면함과 교육열, 강인한 생존 의지로 불가능을 현실로 만들었다. 세계는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 불렀다. 그런데 그토록 찬란했던 빛이 지금 사라지려 한다.

이번 대선이 그 분기점이다. 외교안보, 재정복지, 사회교육, 에너지 등 주요 정책에서 양 진영의 노선은 분명히 갈린다. 한쪽은 전통적 한미동맹과 한일협력을 중시하며, 대북 억지력과 북한 주민의 자유와 인권을 우선한다. 다른 한쪽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전체주의 중국에 경도되고 무조건적 북 정권 포용을 주장한다. 한미일 삼각협력보다는 대북 추종적 외교에 방점을 찍는다.

재정복지 정책에서도 한쪽은 지속가능성과 균형재정을 중시하며, 근로의욕을 꺾지 않는 선에서의 선별적 복지를 선호한다. 반면 다른 쪽은 적극적 재정지출과 복지확대를 통해 경제 활성화와 사회 통합을 도모하겠다고 말한다. 교육과 사회 정책도 마찬가지다. 전자는 자유와 책임을 중시하고 공정한 경쟁 속에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한다. 독립된 자아로서 자기 책임하의 삶을 설계하도록 국민을 이끈다. 반면 후자는 계급의식과 집단정체성을 강조하며, 평등이라는 이름 아래 경쟁을 억제하려 든다.

이처럼 정치적 선택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지도자와 정당의 정책 및 이념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그러나 최근 대선 여론조사를 보면 적잖은 국민들이 지도자의 정책이나 철학은 물론, 인격적 면모조차 경시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살아온 삶에서 보여준 언행, 인간이라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성과 품격, 공적 책임에 대한 태도는 지도자를 평가함에 있어 본질적인 요소다. 그럼에도 일부 유권자들은 이 모든 것을 덮은 채 지엽적인 공약이나 소아적, 이기적 계산에 휩쓸리는 듯하다.

국가는 법과 제도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사회는 구성원의 윤리적 자각과 책임감 위에 선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도덕적 무장이 약화되면,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게 된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바로 '시민의식'이다. 그 기본은 진실과 교양을 중시하고,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마음가짐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유권자들은 이 점에서 많은 반성을 해야 한다.

우리가 다시 찬란했던 '초원의 빛'을 되찾을 수 있을까. 단지 회고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과거의 영광을 품고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까. 이번 선거는 그 방향을 결정지을 중대한 기로다. 우리는 변변한 자원이 없다. 오직 사람뿐이다. 자원이 풍부한 두 부류의 국가의 길이 교훈을 준다. 아르헨티나나 베네수엘라처럼 포퓰리즘의 유혹에 무너질 수도 있고, 노르웨이처럼 절제와 책임의 미덕으로 지속가능한 번영을 일굴 수도 있다. 사람이 자원의 전부인 우리는 국민 개개인이 온전한 정신으로 깨어 있어야 번영할 수 있다.

2025년의 이 분기점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후세는 지금 세대가 어떤 시대정신과 가치와 양심을 가졌는지를 평가할 것이다. 기억하자. 오월의 초원의 빛은 혹독한 혹한의 겨울을 지나서 찾아온 것이다. 우리는 올바른 선택을 통해서만 다시 '대한민국이란 영광'을 맞이할 수 있다.

이규화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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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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