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슈미르는 인도와 파키스탄 간 군사·외교적 충돌의 화약고다.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독립 이후 시작된 이 땅의 분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명확한 국경선 없이 실질 통제선만 존재하는 상황이라 작은 마찰도 언제든 대규모 충돌로 번질 수 있다. 위기를 반복해서 '관리'하는 것으로는 갈등의 뿌리를 뽑을 수 없다. 필요한 것은 계산된 보복이 아니라, 외교와 협상을 통한 구조적 해법이다.

◆제국의 유산이 남긴 불씨

히말라야 산맥 서부의 한준한 산악 지대인 카슈미르는 면적이 22만㎢로 한반도와 비슷하다. 고급 의류 소재 '캐시미어'는 이곳에 사는 산양 털로 만든다. 하지만 이 곳은 영토와 민족, 종교와 물까지 얽혀있는 분쟁의 용광로다.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영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할 당시, 토후국 카슈미르 왕국은 힌두교도 지배층과 무슬림 다수 주민으로 구성돼 있었다. 무슬림들은 파키스탄 편입을 요구했지만, 왕은 독립 유지를 원했다. 이후 파키스탄 지지 무장세력이 커지자 지배층은 인도 편입을 결정했다. 이는 양국 간 첫 전쟁(1947~1948)으로 이어졌다.

전쟁은 유엔 중재로 일단락됐지만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카슈미르는 북서부는 파키스탄이, 중부와 남부는 인도가 각각 통치하게 됐다. 이같은 분할은 갈등의 종식이 아닌 시작이었다.

양국은 1965년에도 카슈미르 문제로 전쟁을 벌였고, 1971년에는 동파키스탄(현 방글라데시) 독립과 관련해 다시 전쟁을 치렀다. 두 나라는 1972년 '심라 협정'을 통해 1949년에 정한 카슈미르 내 휴전선을 사실상 국경선인 '실질통제선(LoC)'으로 정했다. 특히 두 나라가 1998년 나란히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핵보유국 간 전쟁'이라는 새로운 공포를 세상에 던졌다.

여기에 중국까지 가세하며 갈등의 지형은 한층 복잡해졌다. 중국은 1962년 중·인 전쟁 이후 카슈미르 동북부 악사이친을 실효 지배하고 있다. 인도는 이를 자국 영토라 주장한다. 이처럼 카슈미르 문제는 단순한 국경 분쟁이 아니다. 탈식민 분할의 비극, 종교 갈등, 강대국 경쟁이 한데 얽힌 남아시아 지정학의 압축판이다.

◆말로는 복수, 실제론 절제

흥미로운 점은 정작 '전면전'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019년 인도 보안군을 겨냥한 자살폭탄 테러 이후, 인도는 파키스탄의 개입을 이유로 공습을 감행했고, 파키스탄 역시 맞대응했지만 충돌은 확전 없이 마무리되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양상이다. 전면전 위기에서 극적으로 휴전에 합의했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양국 모두 전면전에 따른 막대한 경제·외교적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인도는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며 글로벌 투자 유치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더구나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중국 고율관세 정책 이후, 중국에 공장을 세웠던 다국적 기업들이 인도로 생산 거점을 이전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되는 상황이다. 애플이 그 대표적인 예다. 애플은 트럼프 행정부의 첫 번째 임기인 2017년부터 인도에서 생산을 시작했다. 이제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를 맞아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내년 말까지 미국에서 판매되는 모든 아이폰을 인도에서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연 6000만대를 인도에서 생산하는 것이다.

인도는 이런 '거대한' 경제적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지금 전쟁이 일어난다면 외국 자본 유치에 치명적이다.

파키스탄은 돈이 없다. 파키스탄은 외환 위기와 정치 혼란을 겪으면서 중국과 중동 국가에 손을 벌릴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다.

게다가 파키스탄은 군사력에서 밀리고 있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에 따르면 핵무기 수만 놓고 보면 인도(172개)와 파키스탄(170개)이 거의 대등하지만, 그 외 전력에서는 인도가 단연 우세하다.

인도는 140만명 규모의 병력을 자랑한다. 육군 123만명, 해군 75만명, 공군 14만명, 해안경비대 1만3000명 등이다. 70만명인 파키스탄보다 두 배 많다. 파키스탄은 병력이 육군(56만명)에 집중되어 있다. 해군과 공군은 각각 3만명, 7만명 수준에 그친다.

공중전 전력도 마찬가지다. 인도는 730대의 전투기를 운용 중이고, 파키스탄은 450대 수준이다. 인도 공군 전력의 상당수가 노후한 미그기 중심이라는 것은 약점으로 꼽히지만, 최근 인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무기 공급이 지연되자 프랑스 라팔 전투기 등 서방 무기 도입을 대폭 늘리며 전력 현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군사비 차이도 극명하다. 인도의 연간 국방 예산은 파키스탄의 9배에 달한다. 전면전이 벌어지면 파키스탄은 불리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파키스탄은 말은 거세게 해도, 실제론 전쟁은 피하고 싶은 게 본심이다.

여기에 핵 보유가 대규모 전쟁을 억제하는 '상호 확증 파괴'의 틀로 작용하면서 양국은 도발→응징→외교적 메시지→긴장 완화라는 정해진 수순 안에서 위기를 관리하고 있다. 일종의 정치적 시소게임이다.

◆이제 구조적 해법 필요

이를 보면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위기가 터질 것이다. 이제 구조적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과거처럼 긴장이 고조되다 어느 순간 봉합되는 반복적 시나리오는 카슈미르를 영원한 분쟁지역으로 고정시킬 뿐이다. 남아시아 전체의 발전에도 심각한 걸림돌이다.

인도는 안보 리스크를 벗지 못한다면 '탈중국'의 대안이 되지 못할 것이다. 파키스탄 역시 대외 안보 위기 조성을 통한 국내 결속 전략을 버려야 한다. 국제사회는 단순한 중재자 역할을 넘어서 다자적 틀 마련에 나서야 한다.

위기를 관리하는 척하면서 반복하는 것은 해법이 아니다. 진짜 평화는 위기의 뿌리를 구조적으로 해소할 때만 가능하다. 카슈미르 문제의 해결은 인식을 대전환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카슈미르의 밝은 미래는 총과 국경선이 아니라, 용기 있는 사고 방식의 대전환을 통해 열릴 것이다. 논설위원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박영서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