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3곳 중 2곳은 현행 탄소중립 정책을 규제로 인식하며, 인센티브 중심으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는 시장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기준 1000대 제조기업을 대상(120곳 응답)으로 탄소중립 정책에 대한 산업계 의견을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64.2%는 국내 탄소중립 정책이 인센티브 요인보다 규제 요인이 더 많은 것으로 평가했다.
응답기업의 4.2%만이 현행 탄소중립 정책에서 인센티브 요인을 체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설문조사는 금년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이하 NDC) 제출과 제4차 배출권거래제 할당계획 수립을 앞두고 산업계의 탄소중립 정책에 대한 인식을 조사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됐다.
탄소중립 정책의 최상위 법령에 해당하는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1조는 경제와 환경의 조화로운 발전을 지향한다. 아울러 배출권거래법 제3조는 배출권거래제가 경제 부문의 국제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명기한다. 한경협은 "기업들이 현행 탄소중립 정책을 규제로 인식하고 있어 경영활동과 국제경쟁력 확보에 제약요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산업계는 2030 NDC의 달성가능성을 37.0%로 '낮음' 수준으로 평가했는데, 특히 응답기업의 과반(57.5%)이 달성 가능성을 낮다고 평가했다. 달성가능성이 높다는 응답은 5.0%에 불과했다.
한경협은 이러한 산업계의 평가가 한국의 탄소집약적 산업구조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산업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 중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 온실가스 감축이 어려운 다배출 업종의 비중이 2022년 기준 약 73%를 차지하는 등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어려운 산업구조를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응답기업 52.5%는 배출권거래제의 유상할당 비중을 현행 10%로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한경협은 산업계의 부담을 고려해 규제에서 현행 탄소중립 정책을 인센티브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배출권거래제의 경우 제도에 대한 참여여부를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며, 참여하고 있는 기업은 언제든지 자유롭게 탈퇴가 가능하다. 또 기업 스스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하며, 목표 미이행에 따른 불이익이 없을뿐 아니라 목표 달성을 위한 각종 금융·세제 혜택을 지원한다.
한경협은 국내 경제의 높은 대외의존도를 고려할 때, 글로벌 정책 동향을 반영하여 실현 가능한 NDC 목표 수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올해 파리 기후변화 협정 탈퇴에 서명했고, 유럽연합(EU)은 최근 기업들의 환경 규제로 인한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옴니버스 패키지를 발표한 바 있다.
이 외에 기업들의 배출권거래제 이행비용 부담을 완화시켜주기 위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배출권거래제의 강도 상향은 기업들의 이행비용 부담으로 작용하는데, 기업의 배출권 할당량이 감소할 경우 기업은 부족한 배출권을 구매하기 위한 비용부담이 증가한다. 배출권거래제 유상할당 비중이 증가하면 배출권 구매비용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전기요금 인상 부담이 가중된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산업계의 탄소중립 이행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유인체계 마련이 선결되어야 한다"며 "규제에서 인센티브로의 관점 변화를 통해 경제성장과 탄소중립을 함께 달성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