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폐공사의 위기는 새로운 사업을 찾지 못한 데서 비롯된 위기라고 느꼈습니다. 화폐와 여권 제조 등 전통 사업 기반을 충실히 다지고, 모바일 지역사랑상품권과 모바일 신분증 등 디지털 기반 사업을 적극 수행하며 핀테크 전문기업으로의 '업(業)의 전환'을 모색했습니다."
성창훈(사진) 조폐공사 사장은 대전 조폐공사 본사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공사는 과거 화폐 제조 과정에서 축적한 위변조 방지 기술을 바탕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면 펄프와 보안 잉크 등 원자재 중심의 제품을 수출 주력 품목으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조폐공사는 화폐의 원재료로 사용되는 면 펄프를 수급하기 위해 2010년 우즈베키스탄에 자회사 GKD(GLOBAL KOMSCO DAWESOO)를 설립했다. 면화 생산 세계 6위, 수출 2위인 우즈벡은 전체 수출액의 20%가 면화일 만큼 풍부한 생산 기반을 갖췄다. 공사는 은행권 제조에 필요한 면 펄프를 우즈벡에서 들여오고, 나머지는 수출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공사의 면 펄프 수출은 2021년 226억원, 2022년 300억원에 이어 지난해에는 네덜란드와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387억원을 기록하며 꾸준한 증가세를 이어갔다.
성 사장은 "우즈벡 면화 공장에서 생산된 면 펄프 가운데 5%만 국내로 들여오고, 95%는 수출하고 있다"며 "돈의 원료는 부가가치가 높아 가격 경쟁력을 갖춘 주력 수출 품목"이라고 설명했다.
성 사장은 또 다른 수출 전략으로 블록체인 기반의 '한국형 모바일 신분증(K-DID)'을 꼽았다. 그는 "10년 전 조폐공사가 미래전략실을 만들고, 디지털 시대에 조폐공사가 무엇으로 먹고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며 블록체인 기술에 착안했다"며 "실물 화폐와 신분증 제조에 쓰이던 위변조 방지 기술을 디지털로 확장할 수 없을지 고민했고, 그 결과 '블록체인 기반 모바일 신분증'을 개발하게 됐다"고 했다.
공사는 2021년 모바일 운전면허증, 2022년 모바일 국가보훈등록증 시스템을 구축한 뒤, 7대 국가 신분증의 모바일화를 완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4400만명 이상이 사용하는 모바일 주민등록증 발급을 위해 2023년 '주민등록법'을 개정해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와 시스템 구축 협약을 체결했다. 이후 40여명의 전문 인력을 투입해 전담 조직을 구성하고 역량을 집중했으며, 지난해 말 모바일 주민등록증 서비스를 처음 선보인 데 이어 올해부터는 전국 단위로 발급이 시행됐다.
K-DID는 현재 공적개발원조(ODA) 대상국을 중심으로 도입 제안과 협력 요청이 늘어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국가는 필리핀이었다. 2023년 조폐공사는 필리핀 현지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 해당 기술을 소개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필리핀 DID 구축 타당성 조사를 위한 예비·기획조사를 실시했다. 공사는 당시 전문가를 직접 파견해 사업 형성과정에 참여했으며, 올해 해당 사업이 KOICA 국별협력사업에 최종 선정됨에 따라 본격적인 착수를 준비하고 있다.
성 사장은 "우즈벡도 관심을 보여 현재 컨설팅이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고, 남미 등 관심을 보이는 국가도 상당히 있다"고 했다.
공사는 특수 잉크와 펄프 소재 수출을 넘어, 고부가가치 소재인 '광학 필름' 분야로도 수출을 확대할 방침이다. 이 가운데 '광 결정 필름 기술'을 차세대 수출 전략으로 준비 중이다. 광 결정은 새파란 몰포 나비의 화려한 색채에서 착안한 생체 모사 기술로, 홀로그램보다 면적에 따른 깊이감과 색감이 뛰어나다. 공사는 이 광 결정 필름을 연속 공정 방식으로 양산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성 사장은 "지폐에 들어가는 홀로그램은 현재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지만,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기술로 광 결정 필름을 연구하고 있다"며 이어 "레퍼런스가 쌓이면 수출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공사는 전통의 조폐 제조 기업에서 ICT 기업으로 다변화하듯, 성장 동력을 모색하며 역동적인 변화에 나서고 있다. 매출 확대를 위해 신사업과 수출 시장 개척에도 지속적으로 도전할 방침이다.
성 사장은 "제가 있는 동안 매출을 6000억원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조폐공사가 산업이 되다'를 아젠다로 삼아, 공사의 사업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ICT 기업은 금융과도 접목할 수 있고, 문화 기업으로도 도약해 새로운 수출 시장을 넓혀가고자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