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폐공사
지난해 화폐 매출 비중 17.2% 수준
'현금없는 사회' 기조서 사업 다각화
ICT분야 인력 4년새 28명 → 108명
'인왕제색도'부터 BTS·손흥민까지
요판화·기념메달에 소비자 호응 커
화폐부산물로 만든 볼펜 등도 눈길

한국조폐공사 대전 본사 전경 [한국조폐공사]
한국조폐공사 대전 본사 전경 [한국조폐공사]
현금 없는 사회 흐름 속에서 한국조폐공사가 사업 다각화와 수출 다변화로 새로운 활로를 열고 있다. 조폐공사는 전통적인 조폐 제조 기업에서 정보통합기술(ICT) 기반 기업으로 외연을 넓히고, 한국의 문화 가치를 메달과 요판화에 담아내 문화 산업 확장에 나섰다. '돈만 만드는 기업'에서 이제는 '돈도 만드는 기업'으로서 업(業) 전환을 본격화했다.

◇현금 없는 사회… '새로운 기회의 장'으로

조폐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화폐 매출 비중은 17.2%로 집계됐다. 1951년 100%였던 화폐 매출은 1990년 59.5%로 60% 아래로 내려갔고, 2020년에는 20.4%까지 하락했다. 이후 지난해 처음으로 10%대에 진입하며 감소세가 더욱 뚜렷해졌다.

이러한 '현금 없는 사회' 흐름은 공사에 위기이자 동시에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됐다. 실물화폐와 국가 신분증 제조·공급을 전담하는 기존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ICT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이에 따라 공사는 국가 보안시설 '나'급인 ID 본부 내에 통합 데이터센터(IDC)를 구축했다. 공사 최초의 ICT 전용 건물인 이 센터는 전력과 통신 등 기능이 서로 간 간섭 없이, 고성능을 구현하도록 설계됐다. 서버실을 매개로 모바일 지역사랑 상품권(Chak), 모바일 운전면허증, 전자 여권 발급 서비스 등을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인력과 조직 확대도 병행했다. 2020년 28명 수준이던 ICT 분야 인력은 지난해 108명으로 늘렸고, 조직 역시 2019년에 1개 부서 3개 팀에서 2024년 7월부터 5개부서 12개 부로 대폭 확대했다. ICT 기업의 전환은 단순히 기술과 사업 변화에 그치지 않고,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조직문화 정착과 비즈니스모델(BM)의 근본적인 변화를 수반했다는 것이 공사의 평가다.

한국조폐공사가 화폐 부산물을 재활용해 만든 '돈 볼펜' [한국조폐공사]
한국조폐공사가 화폐 부산물을 재활용해 만든 '돈 볼펜' [한국조폐공사]
◇조폐기술 입은 'K-콘텐츠'… 문화산업 넓힌다

공사는 문화산업 분야에서도 도약에 나섰다. 화폐 제조에 사용되는 고도의 요판 인쇄 기법을 활용해, 조폐공사만이 제작할 수 있는 문화상품 '요판화'를 선보였다. 요판 인쇄는 선과 점을 이용해 이미지를 섬세하게 표현하고, 손으로 만졌을 때 오톨도톨한 촉감이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공사는 지난해 국립박물관문화재단과 협력해, 겸재 정선의 대표작 '인왕제색도'를 크기별로 3종 출시했다. 요판화에는 화폐 일러스트와 인왕산 호랑이 등 미세 문자를 숨겨 보는 재미를 더했으며, 소비자와 수집가들 사이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다. 이러한 수요에 부응해 공사는 지난달 30일부터 이중섭 화백의 명작 '황소'를 2800장 한정판으로 판매하고 있으며, '맹호도'와 '광복80년 기념 요판화'도 연내 출시할 예정이다.

또한 공사는 K-콘텐츠가 전 세계 문화 흐름을 선도하는 데 맞춰, 기념 메달의 주제를 과거의 동식물·건축물 중심에서 한류 콘텐츠로 다양화했다. 세계 대중가요의 역사를 새로 쓴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데뷔 10주년을 기념해, BTS 로고와 숫자 '10'을 모티브로 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기념 메달에는 화폐에 적용되는 특수 보안 요소를 최초로 도입해, 예술성과 기술력을 동시에 구현했다. 2023년 1만8000장 넘게 팔린 BTS 데뷔 10주년 기념메달은 매출액이 86억3600만원에 달했다.

이후 공사는 아시아 최초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골든부츠상을 수상한 손흥민 선수를 기념하는 '손흥민 골든부츠 수상 기념 메달'을 출시했다. 이어 지난 7일에는 글로벌 e스포츠 스타 '페이커(Faker)' 이상혁의 기념메달도 한정수량으로 발매했다.

K-콘텐츠 관련 시장규모가 137조원에 달하는 만큼 공사는 앞으로도 K-콘텐츠와 연계한 기념 메달 사업을 지속 확대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주화·훈장 제조 기술을 활용한 K-예술형 주화 사업도 추진해, 국가 브랜드 향상에 기여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공사는 50년간 방치됐던 경북 경산시 화폐본부 지하 벙커를 미술품 보관용 수장고로 탈바꿈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과 미술은행 수집작, 이건희 컬렉션 기증 등으로 누적 수장품이 급증하면서 서울·과천·청주관 등 기존 3개관의 수장고는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월 기준 수장률은 서울관 92%, 과천관 93%, 청주관 96%에 달했다.

공사는 공실 상태로 남아 있던 화폐본부 지하 공간의 활용을 제안했고,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이 신규 수장 공간 확보를 추진 중이다.

공사는 지난해 9월 정부예산 4억5000만원을 반영해 관련 연구용역을 착수했으며, 올해 상반기에는 정밀안전진단과 내진 성능 평가 등 연구용역을 진행할 예정이다. 전체 사업은 2028~2029년 준공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공사는 국립현대미술관과의 유기적인 협력을 매개로 부지 매입과 건축비 등 국가 예산을 절감하고, 유휴 공간을 활용해 수장고 포화 해소와 소장품의 안전한 보존·관리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중섭 '황소'요판화 전시 모습 [한국조폐공사]
이중섭 '황소'요판화 전시 모습 [한국조폐공사]
◇버려지는 화폐 부산물 '업사이클링 굿즈'로 재탄생

국내에서 버려지는 화폐 부산물은 연간 500톤(t)에 달한다. 화폐 부산물은 화폐를 만들 때 나오는 불량품과 인쇄 자투리, 수명을 다한 폐기 화폐를 처리할 때 나온다. 대부분은 소각 처리되며, 이 과정에서 다량의 온실가스 배출과 처리 비용이 뒤따른다.

이에 공사는 버려지는 자원을 활용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강화와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에 나섰다. 공사는 '돈 기운'을 전달한다는 발상의 시작으로 다양한 굿즈 상품을 개발했다. 조폐공사 기술연구원과 협력 중소기업은 돈 달력, 돈 방석, 돈 가방 등 생활용품부터 필기구, 그립톡, 키링 등 청소년용 팬시 제품까지, 세대·성별·용도에 맞춘 기념품 개발을 위해 다양한 실험과 함께 시제품을 제작했다.

공사는 이러한 노력 끝에 지난 2월 화폐 부산물을 활용한 돈 볼펜을 출시했다. 볼펜에는 잘게 절단된 1000원권, 5000원권, 5만원권 종잇조각이 담겨있다. 2월에는 기업간거래(B2B)로 먼저 출시한 후 이후 3월에는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공사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돈 볼펜은 1만5000개(1억4500만원) 가량이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해외 주요 조폐기관들도 화폐 부산물 활용 방안을 다양하게 모색하고 있다. 미국 조폐국은 잘게 자른 은행권을 기념품 형태로 제작해 워싱턴DC와 포트워스 방문자센터에서 판매하고 있으며, 중국조폐공사는 투명한 십이지신·판다 모양의 용기 안에 화폐 부산물을 담아 상품화하고 있다.

공사는 해외와 차별화된 화폐 부산물 업사이클링 굿즈를 기획·연구개발하고 대부분의 화폐 부산물을 재활용할 계획이다. 향후에는 한국은행과 협의해 국민이 사용한 뒤 훼손돼 회수되는 화폐까지 포함해 화폐 제조·유통 전 과정에서 재활용을 확대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연간 400t 정도의 한국은행 화폐 부산물을 재활용(섬유 등) 방안을 연구 중이다.

공사는 화폐 수요 감소에 기민하게 대응한 결과, 현재 전체 매출의 75%가 비화폐 부문에서 발생할 정도로 사업 다각화에 성공했다고 진단했다. 화폐 디자인부터 용지, 잉크까지 직접 제조해 온 공사는 그동안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여권과 신분증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종합 조폐기관을 넘어 ICT 서비스 기업으로의 진화를 모색하고 있다.

성창훈 조폐공사 사장은 "5~6년 전 회사에 왔을 때, 어떤 처장님이 회사가 어렵고 위기라 조카에게 우리 회사 취직을 권하기가 어렵다고 한 적이 있다"면서 "이후 조직이 역동적으로 바뀌고, 매출도 상승하니까 그런 말들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어 "조폐공사만의 제조 기술을 바탕으로 ICT, 문화, 수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온 만큼, 앞으로도 신산업 창출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라고 덧붙였다.세종=강승구기자 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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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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