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재정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올해 25조7000억원, 국가채무는 1270조4000억원으로 각각 전망됐다. 매년 수십조원씩 재정적자가 누적되는 양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우리나라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올해 54.5%로 치솟아 비기축통화국 평균(54.3%)을 처음으로 넘어설 것으로 봤다. 이렇게 세입보다 세출이 더 빠르게 불어나는 악순환은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그런데도 대선 주자들의 공약을 보면, 마치 나라 곳간에 여유가 넘치는 것처럼 보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모두 감세·퍼주기 공약들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재원 마련 방안은 모호하거나 아예 제시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약은 국가 미래를 위한 비전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대선판에선 미래를 위한 투자보다 당장의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 약속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재정의 지속 가능성은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국가 재정은 단순한 회계 숫자가 아니다. 국가 신뢰도의 표상이자 경제의 기반이다. 재정이 흔들려 버리면 신용도는 추락하고, 시장은 불안정해지며, 금리는 오르고 투자도 위축된다.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재정이 방만하게 운용되면 향후 세대는 높은 조세 부담과 복지 축소라는 고통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문제는 그 어떤 대선 주자들도 이 문제를 정면에서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권자들이 듣기 좋아할 말만 하고, 불편한 진실은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나라 살리는 대선이라 할 수 있는가. 지금 필요한 것은 용기 있는 후보다. 인기 없는 말이라도 해야할 말을 하고, 필요한 개혁이라면 설득을 통해 밀어붙일 수 있는 결기 있는 정치인이다. 재정의 경고등이 켜진 지금, 진짜 유능한 지도자는 퍼주기 공약을 늘어놓는 사람이 아니라, 감당 가능한 약속을 하는 사람이다. 재정 위기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구조조정과 효율화를 약속하는 후보야말로 진정한 '책임 정치인'이라 할 수 있다. 이번 대선은 누가 더 많이 퍼줄지를 겨루는 자리가 아니다. 경제의 지속 가능성과 국가의 미래를 놓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 자리다. 선거가 끝난 뒤 나라 곳간이 텅 비어 국민이 고통받아서는 안된다. 후보들이 진정 나라를 위한다면, 지금이라도 '책임 경쟁'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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