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라는 교육부의 유급·제적 경고에도 의대생들은 요지부동이다. 작년과 같은 학사 유연화는 기대하지 말라는 교육부의 엄포도 마이동풍이다.
지난달 교육부의 전격적인 입학정원 동결 발표 덕분에 마지못해 등록·복학에 응한 의대생 1만9475명 중에서 정상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인원은 최대 34.4%인 6708명뿐이다. 절대 다수의 의대생이 유급·제적 처분의 대상이 되고 있고, 이를 보면 내년 의대의 '트리플링'이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교육부가 마지막 카드로 '의대 편입'을 꺼내 들었다. 계속되는 수업 거부로 무더기 제적 사태가 벌어지면 결손 인원을 모두 편입학으로 채워버리겠다는 것이다. 제적 처분을 받게 될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을 원천 차단해 버리겠다는 무서운 경고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주는 의사의 양성을 위해서 의대생에게는 '휴학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작년의 교육부 입장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억지'다.
교육부가 이번에도 대학 총장들의 '요청'을 방패막이로 내세우고 있다. 총장들이 의정 갈등으로 발생한 특수성을 고려해서 편입학 선발 규모를 최대한 보장해달라고 교육부에 간곡하게 요청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학생의 '교육'보다 대학의 '경영'에 더 신경을 쓰는 총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의대 교육의 부실화 가능성은 애써 무시하고 무작정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 시도를 반겼던 총장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편입은 증원과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의대의 편입은 필연적으로 이공계 학생의 자퇴를 전제로 한다. 편입생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경영에 신경을 쓰는 총장의 입장에서도 의대 편입은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일이다. 의대로 옮겨간 이공계 학과의 교육 붕괴를 바로 잡고, 인원의 결손을 채워야 하는 부담도 만만치 않다. 그런 현실을 무시하고 교육부에 편입 확대를 요구한 총장이 있다는 사실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의대의 편입으로도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의학 교육의 특성상 본과의 편입은 쉽지 않다. 병원에서의 실습 요구 때문에 현실적으로 편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본과 4학년 2511명 중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인원은 929명뿐이다.
본과 3학년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2513명 중 767명만 수업에 참여하고 있고, 32명은 제적 예정이다. 당장 앞으로 2년 동안 의사국가고시의 응시생이 예년의 30%에도 미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의대에 대해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교육부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올해 의사국가고시 합격자도 269명뿐이었다. 당장 의료 현장에서 필요한 신규 의사 확보에 빨간불이 켜진다. 한가하게 10년 후에 필요한 의사 인원에 대한 '과학적 추계'를 하겠다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을 때가 아니다. 국민이 요구하는 전문의 양성에 필요한 '수련병원'을 확보하는 노력이 훨씬 더 절박하다.
전공의 수련을 전담해야 할 '의대부속병원'의 기능도 되살려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어설프게 밀어붙인 상급종합병원의 '전문의 중심 전환'은 서둘러 폐지해야 한다.
대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이다. 교육부의 어설픈 대책은 의정 갈등의 깊은 상처를 덧나게 할 뿐이다. 의대생의 학사 행정은 온전하게 대학의 책임이다. 교육부가 40개 의대의 유급·제적을 통합 관리해야 할 이유가 없다. '대학규제 제로화'를 외치면서 대학정책실까지 폐지했던 교육부가 다시 의대국까지 신설해서 대학의 학칙까지 제멋대로 주무를 이유가 없다.
의대생이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다는 언론의 무분별한 지적도 도를 넘어선 것이다. 의대생도 충분한 분별력과 이성을 가진 어엿한 성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파괴적인 의정갈등은 의대생·전공의가 아니라 정부가 만들어낸 것이다. 헌법이 모든 국민에게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를 교육부가 의대생에게는 용납하지 않고 있는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그런 의대생의 절박한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보도하는 것도 역시 언론의 무거운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