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0년대 제너가 소의 천연두인 우두에 걸린 소의 고름을 사람에게 접종함으로써 천연두를 예방한 것이 최초의 백신이었다. 그렇지만 현대적 의미의 백신 개발은 훨씬 후에 이루어졌다.
미국 의사인 존 앤더스는 바이러스 연구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우선 거의 모든 바이러스는 특정한 동물의 특정한 세포에서만 증식이 가능하다. 둘째로 바이러스가 감염시킬 수 있는 세포는 건강해야 한다. 셋째로 세포에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해야 한다. 넷째는 다른 미생물에 오염되지 않도록 반드시 멸균된 장비를 써야 한다. 마지막으로 배양한 바이러스를 다른 세포조직으로 옮긴 다음 지속적으로 배양이 가능해야 한다.
바이러스를 새로운 조직세포로 옮겨 배양하는 것을 '이차 배양' 또는 '조직 배양'이라고 하는데 당시에는 이런 기술이 없었다.
앤더스가 하버드대학 연구팀의 관리자가 된 1940년대는 소아마비가 극성이었다. 소아마비는 바이러스가 원인이었고, 1916년의 경우 뉴욕에서만 9300명이 소아마비에 걸려서 2200명이 목숨을 잃었다. 1921년에는 나중에 대통령이 되는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소아마비에 걸렸다. 대통령이 된 다음 루즈벨트는 국립 소아마비 재단을 설립하여 연구비를 적극 지원했다.
당시 의료계엔 소아마비 바이러스는 신경세포에서만 자란다고 믿음이 있었는데 신경세포에서는 극미량의 바이러스만 배양이 가능했다. 2차 대전이 끝난 직후 앤더스는 보스턴 소아과 병원에서 감염 질환연구소의 설립과 운영을 맡게 된다.
그는 신경세포가 아닌 수정란을 이용하여 바이러스 배양에 성공했다. 바이러스가 자라면 새로운 수정란을 이용하여 다시 배양하는 것을 '계대배양'이라고 한다. 그는 계대배양을 반복하면 바이러스의 독성이 약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즉 사람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동물의 조직에서 여러 차례 계대배양을 하면 독성이 희석되어 아주 약해진다. 이렇게 해서 약독화된 바이러스 백신은 사람에게 질병을 유발하지 않으면서도 면역성은 갖게 해준다.
앤더스는 자신이 충분히 백신을 개발하고 대량생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한테 넘기는 것이 옳다는 신념으로 소크와 세이빈 두 사람에게 기술과 자료를 모두 넘겨줬다. 1952년 소크는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하여 20만명의 어린이들에게 백신을 투여했다. 그리고 10년도 지나지 않아 소아마비는 더 이상 미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희귀질환이 됐다.
1957년에는 세이빈이 약독화 백신을 만들어서 경구로 투여할 수 있게 했다. 설탕과 섞여서 먹는 달콤한 백신이 가능해졌다. 특히 소크는 백신에 대한 특허를 처음부터 포기하여 백신이 저렴한 가격으로 전세계에 공급되는데 큰 기여를 했다. 1954년 소아마비 백신 원천 기술을 개발한 앤더스와 그의 동료 웰러, 로빈스 세 사람은 노벨상을 받았다.
그런데 소아마비보다 훨씬 전염력이 높은 질환으로 홍역이 있었다. 홍역은 2년에서 4년 사이에 한 번씩 대유행을 일으켰는데, 전염력이 아주 강해 환자를 살짝만 스쳐도 감염이 될 정도였다. "사람에게 죽음과 세금, 그리고 홍역은 불가피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어린이 10명 중에서 9명은 홍역에 걸렸고, 그중 절반이 5살 미만이었다.
앤더스는 처음에는 원숭이의 콩팥세포로 홍역 바이러스를 배양했지만 그 후 대량생산에 적합한 닭을 이용하여 배양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대량 생산하기에 적합한 미국 머크사에 모든 기술을 제공하여 1963년부터 본격적으로 접종이 시작됐다. 그 결과 1963년에 비해 2006년에는 홍역 환자가 1억600만명에서 2000만명으로 줄었고, 홍역으로 사망한 사람도 600만명에서 33만명으로 감소했다. 특히 미국의 감소 폭은 훨씬 더 컸다.
그의 업적은 소아마비와 홍역 백신을 개발했다는 점을 넘어서 모든 종류의 백신을 개발할 수 있는 보편적인 방법을 찾아냈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 따라서 그는 '모든 백신의 아버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