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안 이슈는 결국 화두가 될 겁니다. 대선에서 정치권이 이를 놔두겠습니까." 지난 3월17일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재표결에서 부결된 후 '그래도 한숨 돌린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재계 관계자는 이같이 토로했다.
그리고 6월3일 대선을 앞두고 재계의 이런 우려는 현실로 다가왔다. 기업들은 또 다시 정치권의 '표심 잡기' 희생양으로 전락한 모양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상법 개정안 재추진 공약을 밝혔다. 그러면서 논의 끝에 제외됐던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내용을 다시 포함시키는 더 강한 카드를 내밀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면서도 "상법 개정 없이는 보수가 대선서 승리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를 표심과 연결시켰다.
시장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 건도 마찬가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달 8일 정정공시를 통해 유상증자 규모를 당초 3조6000억원에서 2조3000억원으로 줄이고, 한화에너지 3사가 참여하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다. 유상증자 발표 후 59만원선까지 떨어졌던 주가는 현재 80만원 선을 회복해 투자자 우려도 해소된 모습이다.
하지만 범야권 일부 의원들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4월 14일 '한화 경영권 3세 승계,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를 열며 사실상 종결된 이슈를 다시 꺼내 들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유상증자·경영권 승계 논란은 한화그룹 행적에 근거해보면 합리적 의심이 든다"며 "주주 충실의무만으로 부족하다. 추가적인 재벌 규제·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공약으로 내건 '주 4.5일제', '주 4일제' 공약도 기업들의 제조 현장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선심성 공약'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근로시간 감축과 함께 임금을 깎더라도 생산 축소가 부담인 마당에, 기업들은 임금을 깎지 못한다. 결국 '임금 보전' 총대까지 매야 하는 게 현실이다.
'반(反)기업' 슬로건이 선거철 표심을 잡기 위한 전략으로 쓰인지는 오래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쏟아지는 반기업·반성장 공약들은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 후퇴로 이어질 것이 명약관화다. 게다가 우리 경제는 지난 1분기 마이너스 0.2% 역성장한 상태다.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원자력 발전) 산업은 밑바닥까지 추락하다가 기사회생했다.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는 채권단 관리체제까지 들어가기도 했다. 윤석열 정권으로 교체된 이후 원전은 다시 수출 효자 산업으로 떠올라 사업비 26조원으로 추산되는 체코 원전까지 따냈지만 궤도에 오르기엔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2019년 두산에너빌리티 창원 공장 방문 당시 "한번 휘청이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 고급 인력이 죄다 이탈한 상태서 예전의 경쟁력을 다시 갖추기가 쉽겠느냐"는 기업 관계자의 하소연이 기억난다.
세계경제는 트럼프발 무지막지한 관세정책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기업들은 컨틴전시 플랜(위기대응 계획)을 세우고 어떻게든 위기 속에서 기회 요인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삼성, 현대차 그룹 등 주요 기업들의 대미 투자나 협업 소식은 위기의식과 함께 돌파구 마련을 위한 깊은 고민이 전해지는 대목이다.
주요 경제단체들이 작년 4월 총선 직후 "민생을 살리는 국회", "초당적 협치"를 당부한 지 1년이 지났다. 경영하기 좋은 환경을 호소한 기업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메아리일 뿐인 모습이다. 트럼프발 통상 파고를 넘을 수 있는 힘은 결코 기업을 두드려 표를 얻으려는 정치 논리에선 나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