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여러 지표를 보면 한국의 주택시장은 대체로 안정된 국가로 분류된다. KB부동산시세에 따르면 지난해말 전국 가구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은 중간 수준인 3분위를 기준으로 4.6이다. 중산층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4.6년을 모아야 중간가격 수준의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도시와 인간 정주 분야를 관장하는 유엔 산하 국제기구인 해비타트가 권고한 적정 PIR 3~5배를 크게 넘지 않는 수준이다.
하지만 길을 가는 사람 누구한테 물어봐도 우리나라 집값이 안정돼 있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집값이 너무 올라 언제 월급을 모아 집을 사겠냐는 푸념을 듣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괴리는 집값을 가늠하는 기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앞서 언급한 KB 지표는 전국 주택가격이 기준이다. 전국 주택가격은 아파트, 빌라, 단독주택, 다세대주택 등이 포함된 개념이다. 강남 아파트값이 아무리 많이 올라도 지방 집값이 내려가거나 정체되어 있으면 평균 가격은 제자리 걸음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매스컴을 통해 강남 아파트값이 많이 올랐다는 소식을 귀가 따갑도록 듣는다. 언론은 전북 남원, 경남 진주에 있는 아파트나 단독주택 동향에 대해서는 기사화하지 않는다. 너무 국지적인 데다 사용가치 공간의 주택이어서 일반적인 수요자들이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기사로 쓴다고 해도 읽히지 않는다.
주택은 자산(asset)으로써 가치를 지닐 때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진다. 정부도 지난 3월 서울 강남 3구와 용산구 일대 아파트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할 만큼 이들 지역 아파트값을 잡기 위해 수시로 대책을 내놓는다. 강남 아파트값 상승 뉴스를 자주 접하다 보니 마치 전국 집값이 많이 오른 것처럼 착시하는 때도 생긴다. 한국에서 부동산의 문제는 전국적인 문제가 아니라 국지적, 지엽적인 문제다. 더 좁게 말하면 PIR이 10을 훌쩍 넘는 서울과 강남권의 쏠림 문제이다.
서울 집값과 일정한 시차를 두고 동조화하던 지방 부동산은 요즘 들어 차별화 현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한국부동산원 조사 결과 지난해 서울 아파트 가격은 실거래가를 중심으로 8% 올랐지만, 지방은 오히려 1.5% 떨어졌다. 같은 나라가 맞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방과 서울 주택시장이 따로 논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지난해말 보고서를 보면 한국이 도시 규모에 따른 집값 격차가 회원국 중 가장 컸다. 대도시(인구 150만명 이상)와 소도시(10만명 미만)간 집값 격차가 3배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정책은 자산시장과 공간시장(상품시장)을 분리해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산시장은 서울 강남처럼 투기적 수요가 항상 넘치는 불안정한 시장이다. 사용가치 중심의 공간시장에서는 비교적 안정적인 시장구조이다. 자산시장에서는 초과수요의 합리적 관리 문제가 중요해진다.
주택가격의 상승률은 기본적으로 주택시장의 초과수요의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 주택시장이 자산시장으로 바뀌면 공급만으로는 단기적 시장 안정이 어렵다. 물론 공급확대에 따른 시장 안정 효과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일반 공간시장보다 공급이 시장에 미치는 안정 효과가 낮다는 것이다.
예컨대 경북 안동 아파트값이 급등할 경우 2만 가구만 지으면 시장이 금세 안정될 것이다. 실수요 시장 성격이 강하므로 공급만으로 수급 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자산시장에서는 실수요뿐 아니라 외부에서 유입된 자산 수요가 많으므로 공급만으로는 집값을 잡기 어렵다. 자산시장 성격이 강한 주택시장일수록 공급 확대와 세금, 금융, 거래 제도를 통한 합리적 수요관리 등 동시 처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택시장은 지역별로 구매력, 지역경제, 주택 보급률, 주택시장 성격이 다르다.
이런 특성을 무시하고 전국적으로 획일적인 잣대를 대면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규제를 도입하거나 완화를 하더라도 지역 맞춤형 '핀셋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부동산 정책도 수요가 넘치는 서울·수도권과 빈사 상태인 지방 투 트랙으로 접근해야 한다. 극과 극의 시대, 정책도 살얼음 위를 걷듯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