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는 지난 1990년대초 자산 버블이 붕괴되며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장기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 마이너스 금리라는 비정상적 상황을 경험했다. 30년간 명목 GDP(국내총생산)는 16.3% 늘어나는 데 그쳤으며, 1인당 GDP는 1995년 4만4000달러에서 지난해 3만3000달러로 18.1% 뒷걸음쳤다. 이랬던 일본 경제가 기지개를 펴고 있다. '잃어버린 30년'에서 빠져나오는 조짐이다. 이는 저출산과 고령화, 과도한 정부부채, 생산성 저하 등 일본과 유사한 상황에 처한 우리에 반면교사로 꼽힌다.
하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일본 경제 정상화는 통화정책 완화, 재정 부양, 구조 개혁 등 이른 바 '3가지 화살'로 이뤄진 아베노믹스가 마중물 역할을 했으며 구조조정과 글로벌 공급망 변화가 모멘텀을 형성했다.
일본 경제가 정상화되고 있다는 신호는 크게 네가지다. 첫째 물가의 정상화다. 초완화적 통화정책, 엔저 및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 등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6개월 연속 일본은행(BOJ)의 물가안정 목표치인 2%를 상회했다.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한 것이다.
둘째는 임금 정상화다. 노동시장에서 기업들의 구인이 늘어나는데 힘입어 수급이 타이트해지고, 정부도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 기업에 임금 인상을 독려하면서 2년 연속 5%대 인상이 이뤄졌다. 임금 인상은 가계소득을 늘려 소비로 이어진다.
셋째 금리 정상화다. 일본은행은 세계 각국이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할때에도 금리를 마이너스로 유지했다. 그런데 경기가 좋아지면서 일본은행이 2024년 3월 마이너스 금리, 자산매입 등 경기부양을 위한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철회함에 따라 금리의 시장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은 기업 성과의 정상화다. 비핵심 사업 정리 등 기업들의 적극적인 구조조정에 엔화 약세 등 우호적인 외부환경이 가세해 지난해 4분기 기업들의 합산 매출액이 17년만에 최대에 달하고, 영업이익률 또한 1974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는 등 기업의 경영성과가 뚜렷하게 개선됐다.
일본 경제가 지속가능한 정상화가 되려면 성장동력 발굴과 생산성 개선이 필요하다. 지속가능하고 구조적인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선 물가와 임금 상승의 선순환에서 임금과 생산성 상승의 선순환으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디지털 경제와 친환경 산업으로의 전환 등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주요국 대비 최저수준인 노동 생산성 또한 높여야 한다. 연 1%대 금리는 일본이 지난 1995년 이후 경험해 보지 못한 높은 금리 수준이다. 향후 금리 인상은 신중하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 금리가 급등하면 과다한 정부 부채로 인해 이자 및 재정 부담이 급증할 우려가 크다.
또한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과 관련, 양국 간 경제협력을 확대하는 등 미국과 긴밀한 경제 및 안보 관계를 유지하는 게 지속가능한 정상화의 관건이다.
일본 경제의 정상화는 한국 경제의 반면교사로 중요한 교훈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첫째 거시경제 운용과 관련, 정책 당국의 미온적인 대응은 신뢰 추락과 소비 및 투자 위축으로 연결된다.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해선 명확하고 예측 가능한 정책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이다. 둘째 생산성 개선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임금-물가 선순환은 일시적일 수 있으며, 오히려 비용만 증가시키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일본 경제의 정상화는 일본 기업과 공급망을 공유하는 국내 기업의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K-뷰티, K-푸드 등 소비재 수출 증가와 한국에 입국하는 일본인 관광객의 증가도 예상할 수 있다. 반면 금리 정상화 과정에서 시장 금리가 급등하고,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 청산으로 주요국 주가 하락과 신용리스크 확대 등이 나타날 가능성에도 유념해야 한다.
김영준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일본의 사례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선 단기적 경기 부양책보다 산업구조 개편, 노동시장 유연화 등 구조개혁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