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은 말 그대로 '긴급하고 불가피할 때' 편성하는 예산이다. 그러나 이번 추경 심사 과정을 들여다보면 민생과 경기 대응이라는 본래 취지가 뒷전으로 완전히 밀리는 모습이다. 선심성 엉터리 사업들이 무더기로 끼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경우 불과 3시간43분 만에 7388억원을 증액해 예산결산특별위로 넘겼다. 1분당 33억원을 늘린 셈이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도 단 2시간여 심사 끝에 5371억원을 증액했다. 민주당은 정부 추경안에 없던 지역화폐 예산 1조원을 편성해 단독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행정안전위원회에선 28일 지역사랑상품권 예산 1조원을 신규 반영한 추경안이 민주당 단독으로 의결됐다.
지금 국회가 벌이고 있는 행태는 명백한 '나눠먹기'다. 국민 혈세가 지역구 챙기기에 투입되고 있는 모양새다. 이러다보니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질의에서 "추경은 규모보다 내용이 중요하다"면서 무분별한 증액이 재정건전성, 나아가 신용평가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우리나라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면밀히 보고있는 상황에서, 이런 졸속 증액은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국회는 '더 많이, 더 빨리' 퍼주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을 나눠먹는데 거리낌이 없는 모습은 국민적 분노를 사기에 충분할 것이다. 국회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기관인지, 아니면 세금으로 자기 잇속을 챙기는 모임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당한 추경은 국민도 수용한다. 그러나 엉터리 사업을 끼워 넣어 혈세를 흥청망청 쓰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추경 심사는 재정 원칙을 지키면서 꼭 필요한 사업만 신중히 포함시켜야 함이 당연하다. 경기 침체를 막는다는 명분 아래, 아무 사업이나 끼워 넣어선 안되는 것이다. 국민은 국회에 추경을 맡기며 '혈세로 잔치하라'고 위임한 적이 없다. 하지만 여야를 가릴 것 없이 혈세를 마치 '공돈'처럼 쓰고 있다. 추경이 국민 신뢰를 깎아내리고, 대한민국 재정의 미래를 위협하는 일이 또 반복되고 있다. 국회가 진정으로 민의를 받드는 기관이라면, 이번 만큼은 원칙과 책임감으로 예산 누수를 차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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