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어른들은 "그 애 목소리는 어떠니? 어떤 놀이를 좋아하니? 나비를 수집하니?" 따위의 말을 결코 하지 않는다. 대신 "그 앤 몇 살이니? 형제는 몇이니? 몸무게는 얼마나 나가지? 아버지 수입은 얼마냐?" 따위만 묻는다. 프랑스 소설가 생텍쥐페리는 소설 '어린 왕자'에서 어른들은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고 숫자만 좋아한다고 비판한다.

21대 대통령 선거를 한달여 앞두고 이뤄지는 언론 보도 역시 그러하다. 대통령 후보자 인물 자질이나 정책 보도 대신에 후보 선호도 조사, 호감도 조사 등이 난무하고 있다.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주(4.21~28)에만 해도 전국 단위 여론조사 결과가 24건이 발표되는 등 4월에만 총 80건의 대선 관련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보도 내용 역시 수치만 다를 뿐 대부분 비슷하다. '대통령 후보 중 누구를 선호하는가', '누가 민주당 후보가 될 것으로 생각하는가', '누가 국민의힘 후보가 될 것인가' 등에 대한 보도이다. 유력 후보가 없는 국민의힘 상황을 고려해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 ○○○ 국민의힘 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다자대결 시에 어느 후보에게 투표를 할 것인가'에 대한 조사 결과를 싣기도 한다. 이러한 여론조사 보도는 객관적인 것처럼 포장되지만 실은 손쉽고 값싼 보도 방식이다.

오는 5월 11일 대통령 후보자 등록 마감일을 앞두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선 내부 경선을 통해 후보자 선출 과정을 진행 중이다. 민주당은 기존 국민선거인단을 통한 경선 대신 국민참여 경선제도를 채택했다. 이는 권리당원 투표 50%와 국민여론조사 50% 반영을 핵심으로 한다. 국민의힘에서는 여론조사 100%를 반영해 예비후보 4명을 선정했다. 이후 당원 선거인단 투표 50%, 국민 여론조사 50%를 반영해 예비후보 2명을 같은 방식으로 최종 후보로 선정할 예정이다.

일반 국민의 선호도가 유력 정당의 대통령 예비후보에 반영된 시기는 지난 2002년 15대 대선부터였다. 1987년 대선에서는 추대 방식과 찬반 투표로, 1992년에는 대의원을 통한 경선 방식이 도입됐다. 그러다가 2002년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당심 50%과 민심 50%를 동등하게 반영하는 국민선거인단 구성을 했다. 그해 11월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의 단일화 과정은 100% 여론조사에 의존했다. 한덕수 국민총리가 만약 대선 참여를 선언할 경우, 2002년과 같은 100% 여론조사 방식을 통한 후보선출 방식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론조사 중심의 후보자 선출 제도는 정당 구성원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의 목소리가 반영된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반면,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우선시하면서 정당제의 기본 취지를 흔든다는 지적도 많다. 정당의 노선과 정책보다는 후보자 개인의 대중적 인기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정당 스스로도 인재 육성과 정책 개발 대신에 유력 후보자 모시기와 줄서기에 열중하게 된다.

지난해 불거진 명태균씨 사건은 조작된 여론조사 결과가 후보자 선출 과정 및 여론 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명씨는 설문 응답자 선정 과정에서 특정집단을 과대 표집하는 방식으로도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조작 결과는 유력 후보에 편승하는 밴드웨건(Bandwagon) 심리를 활용, 선거에 영향을 미쳐왔다. 여론조사가 정치 모략꾼에게 악용되고, 언론은 결과적으로 이를 홍보하는 셈이 됐다.

인물 중심의 여론 조사와 이를 중시하는 경마식 보도는 미국 정치의 산물이다. 영국 정치가에선 1980년대부터 이를 '미국화'(Americanization)라며 경계해왔다. 선거가 정책투표가 아닌 인물 선호도 조사로 전락한다는 반성이었다. 하지만 여론조사에 의존한 보도가 많아지면서 국민 역시 여론조사 결과를 중요한 투표 기준으로 삼는 경향은 계속되고 있다.

21대 대선 관련 국내 언론보도 역시 마찬가지다. 언론은 후보 자질과 정책이 아닌, 지지도 중심으로 보도하고 있다. 수단이 본질을 가린 것이다. 달을 가리킨다고 말하면서도 손가락 끝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기에 달을 보지 않는 사람을 탓하기도 머쓱하다. 5월 1일부터는 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정책토론회가 열린다. 이제 인물 선호도가 아니라 정책 중심으로 언론 보도가 바뀌어야 한다. 사람 됨됨이와 정책에 집중된 언론 보도가 이뤄져야 국민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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