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불교에서 선종(禪宗)은 경전을 중시하는 교종(敎宗)과 달리 직관과 경험을 중시하며, 선(禪) 수행을 통해 깨달음과 불성(佛性)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한다. 수행을 통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무문관(無門關)'은 선종 옛 스승들의 공안(화두)을 모아놓은 책이다. 중국 남송 시대 무문혜개(無門慧開·1183~1260)가 지었으며, 총 4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에피소드 각각은 논리로는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다. 오로지 직관을 통해 본 뜻을 알아차려야 한다. 고(故) 김영삼 대통령의 좌우명이며, 정치인들이 종종 거론하는 '대도무문'(大道無門·큰 도는 문이 없다)도 무문을 강조하고 있다. 큰 도엔 문이 없다, 즉 나와 세상에 거스를 게 없다는 뜻이다.
◇내면의 평안을 통해 진리를 터득하려는 선종
선은 불교의 한 수행방식으로, 내면의 평안을 통해 우주와 인생의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 목표다. 중국 남북조시대 부처님의 직계 제자였던 마하가섭의 28대 제자 보리달마가 양 무제때인 520년 중국에 선을 전하며 선종의 시조가 됐다. 보리달마 이후 중국 선종은 혜가-승찬-도신-홍인-혜능 등으로 법통이 이어진다. 특히 육조 혜능은 중국 선의 실질적 개조로 꼽힌다. 혜능은 "자기 본성(自性)을 깨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불성은 모두가 갖가 있다는 뜻이다. 한국의 조계종은 육조 혜능의 수행처인 중국 조계산에서 명칭이 유래했다.
선종은 화엄경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나 '불립문자'(不立文字, 문자로써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울 수 없다), '교외별전'(敎外別傳, 경전이나 설법 등 문자나 언어에 의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진리를 전하는 일), '직지인심'(直指人心, 눈을 밖으로 돌리지 말고 마음을 곧바로 직시할 것), '견성성불'(見性成佛, 본성을 봄으로써 부처가 될 수 있다) 등 직관적 인식에 의한 깨달음을 추구한다.
수행법도 교종과는 다르다. 교종에선 '팔정도'(八正道)를 내세운다. 팔정도는 정견(正見, 바르게 보기)·정사유(正思惟, 바르게 생각하기)·정어(正語, 바르게 말하기)·정업(正業, 바르게 일하기)·정명(正命, 바르게 생활하기)·정념(正念, 바르게 기억하기)·정정진(正精進, 바르게 노력하기)·정정(正定, 바르게 집중하기)을 말한다. 이가운데 정견과 정정이 가장 중요하다.
이에 비해 선종은 '육바라밀'(六 波 羅 蜜)이 수행법이다. 보시(布施, 베풀기)·지계(持戒, 도덕적 규범의 실천)·인욕(忍辱, 괴로움을 받아들여 참는 것)·정진(精進, 노력하기)·선정(禪定, 맑은 정신으로 집중하기)·반야(般若, 존재의 속성을 통찰하는 지혜의 눈 갖기) 등이다. 선종에선 이를 통해 '밖으로 모습(相)을 여의고, 안으로 흩어지지 않는 것'을 추구한다. '상'(相)은 자신의 고착된 사고방식, 집착, 편견, 분별심, 교만심 등을 의미한다. 인연에 따라 머무름(住)도 없고, 가버림(去)도 없는 상태다.
◇'무(無)' 자(字) 하나로 지혜를
참선은 지관(止觀)에서 출발한다. 생각을 멈추고(지), 세상과 나의 본래 모습을 보는(관) 것이다. 지(止)는 모든 망념(妄念)을 그치고 마음을 한 곳에 기울이는 것이며, 관(觀)은 지(止)로써 얻은 명지(明知)에 의해 사물을 올바르게 보는 것을 말한다. 지(止)와 관(觀)은 수레의 두 바퀴 같은 상호의존 관계다.
'무문관'(無門關)은 '무(無)'자의 정확한 탐구만이 선문(禪門)의 종지(宗旨)에 들어서는 제일의 관문이라는 뜻이다. 불교는 '무'자 한자만 알면 된다는 얘기다. 무문관 제 1칙은 "오로지 이 하나의 무자가 종문의 일관(一觀)이다. 이것을 선종의 무문관이라고 한다"라는 구절이다. 유명한 '조주무자'(趙州無字)라는 공안이다.
한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에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없다." (중략) 또한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있다." 얼핏 들으면 '말장난'하는 것 아닌가라고 여길 수도 있다. 조주 선사가 말하려 했던 것은 개에게 불성이 있는지 없는지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으면 진리에 이르지 못하고 여전히 상(相)에 머무르는 단계다.
조주 스님은 당나라의 선승으로, 마조도일에서 이어지는 남전(남천)보원의 제자다.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인가?(如何是祖師西來意)", "뜰 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狗子還有佛性也無)", "차나 한잔 마시게(喫茶去)"는 그로부터 비롯된 유명한 공안이다. '무문관'과 함께 유명한 공안집인 환오극근 스님의 '벽암록'(碧巖錄)에는 조주 스님이 던진 공안들이 많다.
무문관은 선인의 공안 48칙을 본칙(本則)으로 하고, 각 칙마다 저자인 무문혜개가 선에 대해 풀이한 '평창(評昌)'이 뒤따르며, 이어 그 요지를 간결한 시구로 표현한 송(頌)이 뒤따르는 형식으로 이뤄져 있다.
저자 혜개는 절강성 전당 사람으로 천룡광에게 가르침을 받고 출가했다가 뒷날 만수사 월림사관의 제자가 됐다. 월림사관 아래서 '조주무자' 공안을 6년동안 수행하면서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 그뒤 여러 절을 편력했으며 1246년 호국인왕사의 개조가 됐다.
'무문관'은 쉽게 읽을 수 없다. 논리를 써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철학자 강신주가 쓴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는 그 난해한 세계를 논리로써 풀어낸 책이다. 하지만 선사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것은 언어와 논리를 떠난 진리와 지혜의 세계다.
논설실장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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