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무슨 이유에서 민감국가로 지정됐는지 정부는 정확히 파악하고, 후속조치를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지난 15일(현지시간) 한국에 대한 미국 에너지부(DOE)의 '민감국가 리스트(SCL)' 발효 관련 취재에서 모 대학 교수는 분을 이기지 못한 듯 정부를 향해 강한 어조로 이렇게 성토했다.
정부는 지난 1월 미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것을 2개월이 지나서야 뒤늦게 알게 된 이후 지금까지 지정 이유를 명확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외교부가 지난달 언론을 통해 민감국가 지정 소식이 알려지자, 외교정책상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 관련 문제가 이유인 것으로 파악됐다는 입장문을 발표한 게 전부다. 이어 미국 측 인사인 조셉 윤 주한미국대사 대리가 "민감정보 취급 부주의에 따른 조치"라고만 언급하고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과거 한국에 원자력 기술을 이전해 준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체코 원전 수출을 놓고 한수원을 상대로 벌인 지식재산권 분쟁 이후 미국이 한국에 대한 첨단기술 통제 및 견제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현재로선 정부가 나서서 민감국가 지정 이유를 정확히 파악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정부의 직무유기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인 미국이 한국을 북한, 이란, 수단 등과 같은 적성국가로 분류했는데, 이런 중대한 사안을 정부가 사전에 알지 못했고, 그 이유 조차 지금까지 모르고 있다는 건 외교·안보, 과학기술, 산업적 측면에서 매우 심각한 일이다.
물론, 뒤늦게 민감국가 지정 사실을 알고 안덕근 산업부 장관이 부랴부랴 미국을 방문해 미국 에너지부 장관과 만나 지정 해제 등을 요구하며 실무 협의를 이어 갔지만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정부는 미국과의 협의를 계속해 나간다는 입장이지만, 지정 해제를 장담할 수 없어 여전히 안갯속이다. 설령 지정 해제가 되더라도 미국 내부 절차 등을 고려할 때 상당 기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 와중에 정부는 민감국가 발효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 에너지 협력에 차질이 없다는 점을 반복하며 강조하고 있다. 미 에너지부 산하 국립연구기관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차세대 원자력 기술협력 양해각서 체결, 미 미주리대학에 우리의 연구용 원자로 기술 수출 계약 등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이를 알리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민감국가 발효에 따른 부정적 여론을 차단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모습에 씁쓸해진다. 일단 소낙비부터 피하고 보자는 심산인 듯하다. 앞으로 닥칠 문제의 심각성을 예측하지 못해서일까.
분명한 것은 민감국가 발효 영향으로 양국 간 에너지 분야 기술 협력에 위축을 가져올 게 불을 보듯 뻔하다는 점이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산업과 미래 기술 경쟁력을 저하시킬 것이다. 여기에 '민감국가' 낙인으로 인한 국제사회에서 국가 신뢰도 하락, 기술 협력 제약 및 기술 통제 강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후유증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앞으로 우려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민감국가 지정 해제를 조건으로 우리나라를 압박하는 또다른 협상카드로 언제든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응한 철저한 대응 전략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최근 국회 입법조사처는 보고서를 통해 "이번 조치가 장기화될 경우 협력 위축 및 국가 신뢰도 저하 등의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며 "정부는 신속한 외교적 대응과 국내 연구보호 조치를 병행하고, 장기적인 과학기술 협력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정부 차원의 대처를 주문한 바 있다.
민감국가 지정에 민감해 하지 않는 정부가 아닌, 이 문제에 대해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치밀하게 대응하는 정부가 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