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대선 시계추가 빠르게 돌아가면서 세종정부청사의 긴장지수가 덩달아 올라가고 있는 양상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정부조직개편이 불보듯한 상황에서 각 부처는 그 내용과 파장을 주시하며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국정 공백 누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애쓰는 분위기다. 특히 '필수추경'안의 국회 통과와 더불어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다 걸기 하고 있다.
공직사회의 최대 관심 중 하나는 한덕수 대행의 대선 출마 여부다. 무슨 이유에선지 출마와 관련해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서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따른 2017년 조기 대선을 앞두고 보수진영의 유력 후보로 꼽히던 황교안 권한대행이 불출마를 선언한 것과 뚜렷이 대비된다.
한 대행의 출마 여부는 지난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를 계기로 결정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뜬금없이 "대선에 나갈 것이냐"라고 물었고, 한 대행은 "고민 중이나 결정하지 못했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상호 관세나 방위비 분담금 문제 같은 현안 보다 훨씬 더 정치권이나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대목이었다. 공직사회의 반응은 더했다. 앞서 국무총리실 관계자들에게 "대선의 'ㄷ'자도 꺼내지 말라"고 했다는 한 대행이다.
14일에는 한 대행이 "국무위원들과 함께 저에게 부여된 마지막 소명을 다하겠다"고 밝히면서 출마설이 불출마 쪽으로 일단락되는 듯 했다. 그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미국발 통상전쟁이 요동치고 있다"며 "각 부처 장관들께서는 이해 관계자 우려 등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오직 국익과 국민만 생각하며 미 측이 제기하는 각종 비관세 장벽 및 협력 프로젝트 등에 대한 전략적 대응 방안을 구체화시켜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방점이 '국무위원들과 함께', '마지막 소명'에 찍히면서 그 맥락으로 보아 출마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시사한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었다.
영국 유력 일간지인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는 대선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며 "노 코멘트(No comment)"라고 답했다. 이전과는 사뭇 다른 뉘앙스다. 외신 인터뷰는 지난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뤄졌다. 한 대행이 대선 출마와 관련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힌 것은 사실상 이 때가 처음이다.
하지만 애매모호한 전략적 스탠스는 이전과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한 대행이 대선 출마와 관련해 "불출마 하겠다"라고도 하지 않자 정치권 안팎에선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사실상 피력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즈음을 전후해 국민의힘 일각에서 한 대행 추대론이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또 출마 뒤 국힘 경선에서 뽑힌 최종 대선후보와의 단일화 방안도 제기됐다. 특히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등이 참여하는 범보수 '빅텐트' 한쪽에서 한 대행이 보수 대표주자가 돼야한다는 주장이 숙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다 한 대행의 출마를 촉구하는 국민추대위가 떴는데 이름을 대면 알만한 정치 원로들이 다수 참여했다. 관세전쟁 본격화를 앞두고 '포퓰리즘'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항마로 대한민국 최고의 통상전문가인 한 대행만한 인물이 없다는 게 주요 논리 중 하나다. 더구나 한 대행은 보수의 취약지역인 호남 출신이다.
국민의힘 대권주자들의 셈법은 복잡해지고 있다. 보수 1위로 올라서는 여론조사 결과가 한 때 나오자 한 대행을 향해 "상식적이지 않다"라거나 "정직하지 못하다"라는 목소리를 키웠다. 특히 야권은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권한대행이 대권 징검다리인가", "노욕의 대통령병 환자"라는 극언 속에 불출마 압박 수위를 한껏 끌어 올리고 있는 중이다.
공직사회는 입을 자물통처럼 꽉 닫고 있다. 다만, 부정론과 긍정론이 공존하는 듯한 기류다. 3차례에 걸친 대통령 탄핵 사태를 모두 겪었다는 한 고위 공직자는 "조기 대선이라는 시간표로 볼 때 중립 속에 공정한 선거 관리가 현실적이지 않겠느냐"고 털어놨다. 반면 "국가의 명운이 걸린 관세전쟁이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통상 전문가로 손꼽히는 한 권한대행이 전면에 나서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반응을 내비쳤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대행의 진짜 속내는 뭘까. 출마 여부를 명확히 하지 않은 채 뜸들이기를 이어가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한 대행을 잘 아는 한 공직자는 그 행보를 '전략적 모호성' 이라고 표현했다. 정치권과의 관계 설정은 다음 문제이고, 미국과의 통상 협상을 앞둔 가운데 불출마를 선언해 자신을 '시한부 권한대행'으로 커밍아웃하는 것은 국익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신념이 바탕에 있는 것 같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를 주목했다. 잘 알려져 있듯 '톱다운' 방식의 협상을 즐기는 트럼프 대통령은 답변하기 곤혹스런 질문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며 상대의 허를 찌르는 스타일이다. 한 대행을 향해 "2개월짜리 아니냐"고 조롱하며 협상의 주도권을 잡으려 했는데 한 대행이 이를 제대로 맞받아쳤다는 것이다. 물론 그를 옹호하는 측의 아전인수일 수도 있겠다.
대선 출마 공직자 사퇴 시한은 오는 5월 4일이다. 분명한 것은 한 대행이 남은 10여일 사이 성과를 내지 못하고선 보수는 물론 국민의 지지를 얻거나 외연을 확장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결국 추경안 처리와 통상협상에서 어떤 결실을 맺을지가 관건이다. '성공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지 않고선 대권을 향해 한발 짝도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냉정한 사실을 한 대행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