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일 하버드대를 때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하버드대에 22억달러(약 3조1000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끊었고, 6000만달러(약 854억원) 상당의 정부 계약을 중단시켰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교육기관에 부여되는 면세 혜택까지 박탈할 태세다.
하버드대는 설립 389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미국 역사 보다도 더 길다. 하버드대는 막대한 기금과 학문적 자유를 바탕으로 미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올려놓은 상징적인 존재다. 미국 최고의 명문대학인 하버드대가 지금 정부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하버드대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갈등의 발단은 트럼프 행정부가 하버드대에 보낸 5쪽 분량의 문건에서 비롯됐다. 이 문건은 학내 반유대주의 시위 단속, 입학 및 교수진 채용 등 대학 운영 전반에 걸쳐 상세한 요구사항을 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하버드가 정치적, 이념적 편향성을 지속하고 테러리스트에게 영감을 주거나 지지하는 '질병'을 계속 추진한다면 면세 지위를 잃고 정치단체로 과세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앨런 가버 하버드대 총장은 즉각 반박 성명을 발표했다. 가버 총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여러 요구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수정헌법 1조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어떤 정당이 집권하든 민간 대학이 무엇을 가르치고 누구를 고용하며 어떤 학문 분야를 추구하는지를 명령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성을 정부 기금과 맞바꿀 수 없다는 결기였다.
하버드대는 1636년 '뉴 칼리지'(New College)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오랜 전통의 하버드대는 역대 대통령을 8명이나 배출했다. 청교도들이 세운 이 대학은 초창기부터 학문의 자유와 진리 탐구를 중요한 가치로 삼아왔다.
하버드대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대학'으로 불릴 정도로 막대한 기금을 자랑한다. 2024 회계연도 기준 하버드대 기금은 532억달러(약 76조원) 규모다. 하나의 대학이 조성한 기금이라기엔 좀체 상상하기조차 힘든 천문학적 규모다.
세계를 상대로 관세전쟁에 여념이 없는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내 교육기관 '뜯어고치기'에도 올인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2개의 전쟁을 수행 중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하버드대 공격은 그가 국내적으로 벌이고 있는 '문화 전쟁'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이미 조 바이든 정부의 진보적 어젠다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왔다. 언론은 이러한 상황을 단순한 문화적 충돌이 아닌 '전쟁'으로 규정하며 심각성을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하버드대 압박 의도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 반엘리트 및 반진보 이미지를 강화하고 지지층에게 '문화 전쟁'에서의 승리를 과시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최근 미국 대학 캠퍼스 내에서 확산되는 친팔레스타인 시위와 반유대주의 움직임을 거론하면서 대학들의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을 문제 삼아 대학 내 이념적 지형을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외국인 유학생의 비자 문제까지 '압박용 카드'로 꺼냈다. 국토안보부는 외국인 유학생들의 불법·폭력 활동에 대한 자세한 자료를 오는 30일까지 제출하라는 서한을 하버드대에 보냈다. 그러면서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학생 및 교환방문자 프로그램(SEVP) 인증 박탈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수많은 외국인 학생들의 하버드대 수학 기회가 막힐 수 있다.
이번 충돌은 단순한 재정 지원 중단이나 정책 갈등을 넘어, 미국 사회가 직면한 근본적인 가치와 방향성의 문제를 드러낸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대학과 정부의 대립 차원이 아니다. 미국이 앞으로 어떤 사회적 기준과 미래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시험대라 할 수 있다. 과연 '트럼프의 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걸까. kt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