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이 수십 년간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비관세 장벽' 8가지를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트럼프는 이를 '비관세 부정행위'(Non-Tariff Cheating)로 명명하고, 이를 바로잡는 것이 진정한 '무역 정의'라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이같은 주장은 상호관세 정책의 정당성을 뒷받침함과 동시에, 비관세 장벽이라는 숨은 문제를 드러내며 글로벌 무역질서 재편을 향한 새로운 포문을 연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는 20일(현지시간) 자신 소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 게시글에서 무역 상대국이 그동안 미국을 상대로 취한 8개의 '비관세 부정행위' 세부 사항을 나열했다. 그가 제시한 8가지 부정행위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환율 조작이다. 수출 경쟁력을 인위적으로 높이기 위한 통화 절하를 지적한 것이다. 대표적 국가로 중국을 거론하고 있다. 둘째는 부가가치세다. 트럼프는 부가세가 간접적인 수출 보조금이자 비관세 장벽이라고 본다. 수입품에만 부과되는 부가세가 자국산에 유리하다는 논리다.
셋째는 덤핑이다. 제조원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수출해 시장을 왜곡하는 행위를 들었다. 이는 반덤핑 관세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넷째는 정부 보조금 및 수출 보조금이다. 각국 정부가 자국 기업을 지원함으로써 경쟁을 왜곡하는 사례다. 유럽과 중국의 전략산업 육성 정책을 도마 위에 올린 것이다.
다섯째는 농업 기준이다. 트럼프는 유럽연합(EU)의 유전자 변형 농산물 수입 금지를 예로 들며, 과도한 농업 안전 기준이 미국산 농산물의 진입을 막는 장벽이라고 주장한다. 여섯째는 기술 기준이다. 트럼프는 기술 규제가 미국 제품의 수출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악용되고 있다면서 일본의 볼링공 테스트를 사례로 들고 있다.
일곱째는 지식재산권 침해다. 위조, 도용, 해적판 등으로 미국 기업이 연간 1조달러의 손실을 입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역시 중국이 주 타깃이다. 마지막은 환적이다. 원산지를 속여 제3국을 통해 미국에 우회 수출하는 방식을 지적한 것이다. 베트남, 멕시코 등을 간접적으로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8가지 '비관세 부정행위'는 특정 국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미국과 무역 관계를 맺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는 항목들이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한국의 부가세 부과 구조, 농산물에 대한 까다로운 검역 절차는 비관세 장벽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반도체와 배터리 같은 전략산업 분야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현지 생산 없이 수출 중심 전략을 고수하는 방식은 트럼프가 강조하는 '미국 내 생산' 기조와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비관세 장벽'이라는 전장은 그동안 관세 정책의 그늘에 가려져 왔지만, 이제는 공식적인 외교·경제 전선으로 부상하고 있다. 트럼프는 관세율 인상이라는 전통적 수단을 넘어, 무역 상대국들의 규제 구조·보조금 정책·표준화 기준까지 문제 삼으며 세계 경제의 '룰'을 바꾸려 하고 있다.
이 구도에서는 전통적인 우방국과 적대국의 경계는 무의미해진다. 트럼프식 무역 전략의 핵심은 미국 이익의 극대화이며, 상대가 누구든간에, 심지어 오랜 동맹국일지라도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압박의 대상이 된다. 이제 국제사회는 트럼프의 주장이 단순한 협상 수사가 아니라 구조 개편을 향한 전략이라는 점을 직시하고, 대응책을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에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