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 이후 우리는 그간 우려해왔던 보호무역주의 강화, 자국 우선주의 확대를 다양한 방식으로 마주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과열되어 가는 글로벌 기술 경쟁의 양상은 단순히 기술 개발의 속도와 품질 경쟁을 넘어 경제와 안보 면에서의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대되고 있다. 즉, 국가 차원에서 독자적인 기술 개발 역량을 갖춰 선도적인 위치를 점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와의 협력을 통해 안정적이고 다변화된 기술과 혁신의 가치사슬을 어떻게 일궈 나갈 것인지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과학기술 국제협력을 다시 바라보자. 우리가 그간 관심을 기울여왔던 선진국 중심의 국제 공동 연구개발(R&D)을 통한 기술 경쟁력 확보는 경쟁력의 한 축일 뿐이다. 안정적인 글로벌 혁신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확보하기 위해서는 개발도상국과의 협력을 통해 지속가능한 혁신 기반 구축을 위한 다양한 방식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한 협력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협력을 위한 협력이나 단순 지원 또는 연계된 우리 기업의 진출을 목적으로 한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ODA) 사업 추진이 아니라, 어떤 국가와 어떤 부문에서 협력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석과 전략 수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ODA는 개발도상국과 양자 간, 다자간 협력의 다양한 수단과 자금 중 하나로, 그 특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국내 수요와 연계할 수 있는 더 높은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
ODA와 그밖의 다양한 협력 수단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외교전략과 국내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중장기 개발도상국 과학기술 협력 종합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종합 전략 가운데 과학기술혁신 ODA는 개발도상국의 혁신 기반 성장을 지원함과 동시에 국제적 도전과제를 함께 해결하고 우리나라 혁신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과 국가혁신체계(National Innovation System, NIS) 구축 경험은 많은 개발도상국이 공유받고 싶어 하는 자산이다. 개발도상국의 혁신 역량을 강화하는 ODA를 통해 개발도상국의 성장 자생력을 확보하고 한국 과학기술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강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베트남 과학기술원(VKIST) 건립 지원 사업이나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의 국제기술혁신협력사업(K-Innovation Partnership Program) 등 우리의 발전 경험을 기반으로 한 혁신체계 구축 사업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는 바, 이를 지속적으로 확대해갈 필요가 있다.
또한 기후변화, 자연재해, 디지털 전환 등 전 세계 모든 국가의 도전과제에 대한 공동 연구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이를 선도하는 것은 우리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해 나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공동 연구에서는 우리 기업과 스타트업의 참여를 활성화함으로써 민관 협력의 새로운 장을 열고, R&D를 통해 개발도상국의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모델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과학기술혁신 인력을 양성하고 과학기술 분야의 고급 인재를 확보하는 일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ODA를 통해 개발도상국의 과학기술 교육 및 훈련을 지원하면 한국의 과학기술 분야에 필요한 우수 인재를 유치할 기반이 마련된다. 이를 위해 공동 연구 프로젝트와 교환 프로그램을 활성화하여 개발도상국의 인재들이 한국의 연구 환경에 접근하고 전문성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ODA를 통해 전략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최근 미국의 국제개발청(USAID)의 구조개혁과 이에 따른 ODA의 대규모 감축이 예견된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우리는 이를 기회의 창으로 활용해야 한다. 전세계 최대 공여국의 갑작스러운 지원 감축으로 어려움을 겪을 국가들에 그 공백을 메우면서도 향후 우리와 미래를 함께 할 협력국으로 성장하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강조해왔던 진정한 의미의 상생과 '윈-윈'의 혁신생태계를 글로벌 차원으로 확대할 수 있는 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