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시그널 게이트' 사건으로 미국의 부통령 J.D. 밴스의 이름이 입에 많이 오르내렸다. 필자는 밴스가 부통령 후보로 떠오르기 전부터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한동안 미국의 제조업 쇠퇴와 러스트벨트에 관심을 가졌고, 그러다 보니 오하이오주 러스트벨트 출신인 밴스의 유명한 책 '힐빌리의 노래'를 접했기 때문이다. 참고가 될까 싶어서 같은 제목의 넷플릭스 드라마도 챙겨봤다.
밴스의 책은 제조업이 몰락한 지역의 백인 빈곤층이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아주 생생하게 보여줬다. 스토리는 탄탄했고, 다양한 감정을 자극했다. 학자들이나 정책 입안자들의 시각과 달리 현실 속 러스트벨트 사람들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았다. 밴스는 빈곤층에 대한 미국 정부의 다양한 지원이나 보조금 정책이 왜 효과적이지 못했는지를 설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의 밴스는 마약에 찌든 어머니를 돕기 위해 거짓말을 했고, 고성능 계산기를 사지 못해 학교 수학 수업을 포기할 뻔했다. 단호함을 지닌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밴스는 어린 시절의 빈곤에서 영영 탈출하지 못했을 것이다.
청년기에 물류창고에서 잠시 일했던 밴스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결근을 하고 밥 먹듯 지각을 하는 직원을 목격했다. 러스트벨트의 빈곤층에는 일해서 생활을 개선할 의욕 자체가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밴스가 보기에는 이들에게 일자리를 구해주고 지원금을 준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이런 일화는 그가 나중에 공화당원이 된 이유를 짐작케 해준다.
밴스라는 인물도, 그의 책도 찬양할 마음은 없다. 한국의 현실에 대입할 수 있겠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생각보다 적었다. 미국 러스트벨트의 빈곤을 관통하는 주요 단어는 '마약'이었다. 자신들이 알던 삶이 무너지고 날마다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 사람들은 마약에 빠져들었다. 중독자가 되면 괴로운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지만 현실의 생활은 엉망이 된다. 중독자 부모에게서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커서 "운 좋으면 수급자 신세를 면하고, 운 나쁘면 헤로인 중독으로 사망한다"고 밴스는 증언했다.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경제적 위기에 대한 반응이 마약 중독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사회적 조건의 차이일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한국인들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강인한 의지를 발휘했다. 투잡을 하며 몸을 갈아 넣거나, 투자로 자산 만들기에 도전하거나. '투잡'에서 '투자'로 옮겨간 경우도 더러 있다. 음식점을 하다가 잘되지 않아 배달 일을 병행하다가, 부상으로 병원비가 더 많이 들어 포기하고 '투자'에 매달리게 된 어느 사장님의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자산 관리와 투자에 대한 집착은 불안에 대한 대응일 것이다. 노후 보장이 안 되는 구조 속에서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이 재테크 열풍으로 나타났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투자가 사회 구성원 대다수에게 안정적인 해법이 될 수 있느냐다.
투자는 제로섬 게임의 성격을 지닐 때가 많다. 이를테면 갭투자자가 수백, 수천 퍼센트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웃을 때 한편에는 전세가격 상승과 깡통전세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회 전체로 보면 건전하지 못한 방향일지라도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그런 걸 생각할 여유가 없다. 투자는 철저히 개인의 선택이고 무한한 경쟁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다량으로 만들어내는 제조업의 몰락을 겪으면서 자포자기하고 마약에 삶을 내맡겨버린 미국인들, 그리고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가운데서도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투자하지만 여전히 경쟁 압력에 시달리는 한국인들. 어느 쪽이 나은 걸까? 자포자기하지 않았으니 우리가 낫다고 답할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미국발 관세전쟁으로 한국의 제조업 공동화가 우려된다는데, 아니 비수도권은 이미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들어 청년들이 떠나고 있다는데 정치권에서는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을까? 지금까지는 충분한 논의가 이뤄진 것 같지 않다.
함께 살기 위한 토론을 보고 싶다. 우리가 아무리 경쟁에 익숙해졌어도 그것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JD 밴스는 혼자 러스트벨트를 벗어나 성공한 인물이 되었지만, 우리는 제조업의 미래와 일자리와 지역 균형 같은 문제들을 공동체적인 관점에서 해결해 나갔으면 한다. 산불 재해지역에 달려가 자원봉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찾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