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시각예술가 그룹, 11명의 작가가 전하는 도시 생태계와 인간의 공존을 탐구하는 메시지
사진 제공= 사공토크
삭막한 도시 콘크리트 틈새에서 끈질기게 피어나는 야생의 생명력을 예술로 승화시킨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여성 시각예술 그룹 '사공토크-구르놀다'는 11명의 작가들과 함께 '어반 정글'을 주제로 한 특별한 전시를 선보인다.
4월 5일부터 18일(월요일 휴관)까지 서울 영등포구 대안예술공간 이포에서 개최되는 이번 전시는 '흙이 태양을 만날 때'라는 주제 아래, 도시와 자연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들을 다채로운 시각으로 담아내고 있다.
'구르놀다'의 세 번째 이번 전시는 도시 환경 속에서 인간의 위치를 되돌아보고, 생태계 회복력에 대한 믿음을 예술로 표현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예술 행사를 넘어, 현대 도시 환경에 대한 깊이 있는 문화적 성찰을 제시한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며, 탄소 배출량의 75%가 도시에서 발생하는 현실 속에서, 예술을 통한 생태적 인식 확장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여성 시각예술가들의 섬세한 시선으로 도시와 자연의 관계를 재해석함으로써, 기존의 개발 중심적인 도시 담론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환경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더욱 높아진 지금, 이번 전시는 예술이 생태적 상상력을 확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도시의 생태적 회복력을 모색하는 세계적인 흐름에 발맞춰, '구르놀다'는 예술적 관점에서 도시 생태계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어반 정글'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통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도시 속 자연의 자생력에 주목하며,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의 공존 방식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11명의 작가들이 각자의 개성이 담긴 작품들을 통해 도시와 자연의 다양한 관계를 탐구하고 있다. 작가들은 도시와 자연의 경계, 공존, 침투, 동거 등 다양한 주제를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해석했다. 어떤 작가는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방식에서 도시와 시골의 차이를 발견하고, 또 다른 작가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번성하는 야생 식물의 생명력을 표현하고 있다. 콘크리트 틈새에서 피어나는 민들레부터 하천의 재야생화, 도시 속 유휴 공간에 남겨진 생명체의 흔적까지, 작가들의 작품은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수진 작가는 신문 보도사진에서 채집한 이미지를 콜라주하여 현실 속 사건을 재구성하고,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도록 하게 한다.
김보라 작가는 오래된 벽에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들을 통해, 시간 속에 지워진 사연과 층층의 흐름을 되살려내었다.
김현수 작가는 도심 외곽의 공터에서 발견되는 무질서한 식물 군집, 즉 '정글'에서 영감을 받아, 자본의 논리에 의해 나뉜 도시의 경계를 비웃듯 무성하게 자라는 식물들의 생태적 경계선에 주목하고 있다.
홍지희 작가는 시멘트 숲에서 피어난 자연의 강인함을 통해, 도시의 틈 속에서 끈질기게 적응하며 살아가는 생명력을 표현했다.
라윤작가는 우리 눈에 식물이 그저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일 수없이 물방울이 오르내리며 생애를 만들어내는 식물의 줄기속을 '사랑의 시간'이라 말하며 명아주 줄기가 지팡이가 되려는 이야기를 도심에서 인간과 식물의 미래적인 관계로 제시하고 있다.
정혜령 작가는 도시와 시골에서 자연이 공존하는 방식의 차이에 주목하여, 빛과 그림자의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이를 시각화했다. 빛의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는 그림자의 유동적인 모습을 통해 자연에 순응하는 그림자의 움직임을 표현하고, 도시와 시골의 다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김순임 작가는 'Urban Jungle'이라는 개념을 통해 복잡한 인간 생태계와 자연이 긴밀하게 연결된 공간을 표현하고, 아파트 베란다에 둥지를 짓는 비둘기를 통해 공간의 소유에 대한 성찰을 제시하고 있다.
김성미 작가는 '불일비이(不一非二)'라는 주제로, 영등포의 풍경을 칼로 새겨 빌딩과 철공소가 가득한 문래동의 모습과 도림천 주변 동식물 이미지를 함께 담아내었다.
김해심 작가는 탄천에 조성된 게이트볼 연습장이 생태계를 파괴하고 공간을 획일화했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자연스러운 생태적 흐름의 회복을 촉구하는 편지와 영상을 전시하고 있다.
김희정 작가는 도시인들이 편리함을 추구하며 파괴해 온 자연과의 화해를 기대하며, 잡초의 재생에너지를 통해 자연과의 공존을 모색했다.
하전남 작가는 아파트 숲을 보며 '망령 아파트'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자연 개척을 상징하는 금강 작업 사진 앞에 유령 같은 아파트가 공중에 떠 있는 도시의 모습으로, 자연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욕망과 그로 인해 생기를 잃어가는 도시의 아이러니를 한지 작품으로 표현했다.
이번 전시의 주제인 '흙이 태양을 만날 때'는 단순한 환경 메시지를 넘어,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아울러 전시는 "인간이 꼭 인간만은 아닌 것"이라는 성찰을 통해, 우리가 다른 생명체들과 공유하는 생태계의 일부임을 깨닫게 한다. 도시 환경에서도 자연의 잠재력과 회복력을 믿고, 비인간 생명체들에게 필요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결국 인간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길임을 제시하고 있다. 정래연기자 fodus0202@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