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종별, 분야별로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대응할 계획인데 여기서 구체적인 협상 전략을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설령 전략이 있다 해도 현재 단계에서 밝힐 수 없고, 밝혀서도 안 됩니다.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에 따른 우리 정부의 협상 전략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부 관계자가 답했다. 더 이상 묻지 않고 나왔다. 취재 후 돌아오는 길에 영화 '타짜'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오땡이네. 이번 판은 내가~" "이거 미안해서 어떡하나. 난 구땡인데." 영화 속 하수는 언제나 패를 먼저 깐다. 타짜는 그 패를 보고 본인이 가진 진짜 패를 마지막에 보여준다.
주인공 고니가 최고의 타짜였던 아귀와의 게임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도 확실한 패를 쥘 때까지 준비하고 기다렸기에 가능했다. 고니는 자신의 기술인 '밑장 빼기' 속임수를 아귀가 알아채리라 예측하고 애초 다른 패를 넣어뒀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미국과의 관세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상대방이 깐 패를 확실히 알기 전까지 우리의 패를 보여줘서는 안 된다. 그 전에 상대를 알아야 하고, 상대의 전략 의도를 미리 간파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업가 출신이다. 주고 받는 딜(거래)에 능하다. 관세 정책도 '선(先)관세, 후(後)협상', 즉 우선 관세 방침을 던진 뒤 상대국이 어떻게 나오느냐 봐서 관세율을 조정하겠다는 전형적인 딜 전략이다. 트럼프는 지난 8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의 통화에서 '원스톱 쇼핑' 비유를 들며 양국 간 무역, 관세와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금 등을 한꺼번에 묶어 처리하자고 했다. 단순히 관세라는 통상 이슈뿐 아니라 한국에 민감한 안보 이슈를 넣어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경제·통상 문제와 안보 문제를 별개로 접근해 왔던 우리 정부의 협상 전략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통상 전문가들은 경제와 안보 이슈를 따로 보는 건 트럼프 행정부의 흐름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라 지적한다. 당장 관세율을 몇 퍼센트 낮추겠다는 접근보다 트럼프 행정부 4년 동안 한·미 간 경제협력과 안보협력의 틀을 어떻게 가져갈지 큰 그림으로 협상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이 원하는 산업 정책과 기술협력 사안이 담긴 협상 패키지를 만들어 미국의 양보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트럼프는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 조선업 협력 등에 한국의 참여를 요구해 왔다. 그런 면에서 우리 정부가 조선업 협력과 미국산 LNG 사업을 관세 대응 전략 중 하나로 언급한 것은 시의적절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국회 전체회의에서 한미 양국에 조선 분야가 굉장히 중요한 협상 카드라고 밝힌 이유다. 안 장관은 LNG 문제도 사업성이 있는지, 어떤 형태로 협력할 수 있는지 미국과 협의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면 중국·일본·유럽연합(EU) 등 미국의 다른 동맹국들과 관세 대응 방안을 협의해야 한다는 지적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선 미국의 관세 조치에 보복관세로 대응한 중국의 전략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무역 의존도가 높고,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우리나라로서는 보복보다 협상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 통상 전문가들도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나 대미 협상을 앞둔 다른 나라의 사례를 참고해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행히,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을 포함, 주요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고 10%의 기본관세만 부과하기로 했다. 우리로서는 석 달 간 협상 시간을 번 셈이다. 정인교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향후 협상이 단판 승부가 아닌 지속적 대화와 설득이 핵심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석 달 동안 트럼프가 내민 관세란 패에 숨은 의도를 파악하고, 주변국의 대응 전략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국익을 위해 경제·안보 부처, 그리고 민간을 망라한 범정부적 협력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