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논설위원
미국과 이란이 8년 만에 고위급 핵 협상을 성사시켰다. 중재국 오만의 주선 아래 성사된 이번 협상은 가자지구 전쟁과 맞물려 중동 전역에서 긴장이 고조된 상황 속에서 양국이 다시 협상 테이블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렇지만 협상이 궤도에 오르지 못한다면 중동 정세가 또 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들 것이란 우려가 상존한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양국 대표단은 지난 12일(현지시간) 오만 수도 무스카트에 도착해 약 2시간 동안 핵 협상을 벌였다. 미국에서는 중동 담당 특사인 스티브 위트코프가, 이란에서는 압바스 아락치 외무장관이 각각 대표단을 이끌었다. 지난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핵합의(JCPOA)를 파기한 이후 중단됐던 대화가 다시 개시된 것이다.

이날 협상은 처음에는 미국과 이란이 각각 별도 공간에 있으면서 오만 당국자들이 양측을 오가는 간접 대화로 진행되다가 말미에 위트코프 특사와 아락치 장관이 "몇분 동안" 직접 대면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양측은 오는 19일 협상을 재개하기로 했다. 위트코프 특사는 회담 이후 NBC 방송에 이란과 "매우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눴다"라고 말했다. 미 백악관도 성명에서 "상호 이익이 되는 결과를 이루기 위한 진전된 한 걸음이었다"고 밝혔다.

이날 협상에서 이란은 핵프로그램을 제한하는 대신 경제 제재를 완화해주는 것을 미국에 제안했다고 정통한 소식통들이 전했다. 이 제안은 대체로 2015년 오바마 행정부 시절 타결됐던 핵합의에 토대를 둔 수준이라고 소식통들은 설명했다.



이번 회담은 표면적으로는 진전의 신호로 보인다. 가자전쟁 등으로 복잡하게 얽힌 중동 정세 속에서, 미국과 이란의 외교 복원이 현실화된다면 긴장 완화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협상이 성사될 경우에도 넘어야 할 산은 많다. 핵 프로그램의 범위와 우라늄 농축도, 사찰 규정 등 민감한 쟁점은 여전히 존재한다.

협상 실패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은 타결이 불발될 경우, 이란 핵시설에 대한 군사공격을 단행할 수 있다고 위협하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은 13일 CBS 방송 인터뷰에서 "첫 고위급 회담은 생산적이었다"고 평하면서도 "미군이 더 크고 깊은 움직임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란이 핵무기를 수중에 넣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면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이란은 주변국인 이라크,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튀르키예 등에 "미군의 이란 공격을 지지하거나 영공·영토를 미군에 허용하면 적대행위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한 상태다. 이는 단순한 양자 충돌을 넘어 중동 전역이 충돌에 휘말릴 수 있는 고위험 시나리오를 예고한다.

특히, 이란이 우라늄 농축도를 60% 이상으로 끌어올리며 핵무기 개발에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협상이 실패할 경우 이스라엘의 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아직 이스라엘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JCPOA에 반대해온 과거 전례를 감안하면 이번 회담의 향방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한 오만도 주목된다. 알부사이디 오만 외무장관은 "공정하고 구속력 있는 협정을 위한 공통의 목표가 있다"며 양국의 입장차를 좁히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만의 전략적 중립성과 외교력이 향후 협상의 지속성과 성과에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분명한 것은, 이번 회담은 단순한 핵 문제를 넘어 중동 안보 및 국제질서 향방을 가를 분기점이다. 협상이 성공한다면, 중동은 안정의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회담이 외교를 통한 타협이라는 새 질서를 만들어내기를 기대해 본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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