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징비록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의 '서애 정신'을 총결산한 책이다.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은 한국사에서 보기 드문 리더십의 소유자로 꼽힌다. 임진왜란의 교훈을 잊지 않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징비록'(懲毖錄)을 남겼다. 저자는 서애 리더십의 요체를 사서삼경(四書三經)의 하나인 중용(中庸)의 '성(誠), 용(用), 공(公)' 세가지로 풀이했다. 저자에 따르면 서애는 '통찰, 자강(自强), 방법, 준비, 유연, 권력 비(非)이데올로기화, 그리고 물러남'의 일곱 가지 리더십으로 중용을 실천했다.
책은 송복 교수의 20여년에 걸친 서애 천착의 총결산이다. '서애연구' 등에 기고했던 글들을 다듬고 재배열하고 일부 장(章)을 새로 썼다. 중용의 첫 문장 "성자 천지도야 성지자 인지도야(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성은 하늘의 도이고, 성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에 나오는 성(誠)과 그의 발현인 용(用)·공(公) 세가지를 서애정신의 핵심으로 꼽았다. 그리고 서애의 징비정신, 징비철학이 특히나 돋보이는 것은 실패한 과거의 징(懲)에 머무르지 않고 만들어갈 미래의 '비(毖)'를 겸한 데 있다고 보았다.
책은 '성·용·공의 중용 리더십'의 생생한 발현으로 왜란 직전부터 전쟁 후 낙향해 타계할 때까지 20여년에서 일곱 장면을 꼽았다. 첫째는 통찰. 서애의 통찰력은 미래에 대한 예지(豫知)이고 예지(叡智)였다. 당시로서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한반도 지킴의 통찰력이었고, 그 통찰력으로 한반도는 끝내 조선의 것으로 돌아왔다. 둘째는 지감(知鑑). 서애는 어떻게 이순신을 알아봤을까? 어떻게 종6품을 종3품 당상관으로, 육군을 수군으로, 그중에서도 요직인 전라좌수사로 임명했을까? 사람을 보는 그의 지감력은 너무 놀랍고 너무 적중했다. 셋째는 방법. 군량 확보의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모속(募粟)과 공명첩(空名帖), 국민개병제 속오군(束伍軍). 서애는 '무엇을 할까'의 체(體)와 '어떻게 할까'의 용(用)을 겸비한 리더였다. 넷째는 준비. 서애는 준비의 달인이었다. '준비'의 유무가 임진왜란 평양 전투 승리와 벽제관 전투 패배를 갈랐다. 다섯째는 유연(柔然). 야만적인 명나라 장수들도 서애 앞에서는 순했다. 서애의 유연의 리더십엔 단순히 연성(軟性), 부드러움 이상의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권력의 비(非)이데올로기화다. 그는 보스가 아니라 리더였다. 위압으로서의 권력자가 아니라 존경으로서의 권위자였다. '책임을 지는 자'였고 '책임을 묻는 자'가 아니었다. 마지막은 물러남의 리더십. 그리고 서애는 떠났다.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총 9개의 장 가운데 마지막 3개 장은 서애의 시와 시심에 할애했다. 책을 읽다 보면 이 시대에도 살아있는 서애의 리더십을 만날 것이다. 강현철 논설실장 hckang@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