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질·빠를 질, 바람 풍, 알 지, 굳셀 경, 풀 초. '세찬 바람이 휘몰아칠 때야 비로소 강한 풀인지를 알아본다'는 뜻이다. 위급하거나 곤란한 경우를 당해봐야 의지와 지조가 굳은 사람을 알 수 있게 됨을 비유하는 말이다.

중국 '후한서'(後漢書) '왕패전'(王覇傳)에 나온다. 후한의 초대 황제 광무제(光武帝)가 명장 왕패(王覇)를 칭찬한 말이다. 왕패는 광무제가 군사를 일으킨 직후부터 그를 따르며 생사고락을 함께 한 건국 공신이다. 남양(南陽) 출신 호족으로 한(漢) 왕조의 핏줄인 유연(劉縯)과 유수(劉秀·광무제) 형제들은 전한 말 신(新) 나라를 세운 왕망의 개혁 정치가 실패로 돌아가고 각지에서 왕망 정권에 반대하는 반란군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한 왕조의 부흥을 내걸고 군사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를 따르던 자들은 추세가 좋지 않다며 하나둘씩 떠났지만 오직 왕패만이 남았다. 이때 광무제가 왕패의 굳은 절조를 칭송하며 한 말이 바로 '질풍지경초'다.

공자(孔子)의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編)에 나오는 '세한연후(歲寒然後) 지송백지후조(知松柏之後彫)'와 비슷한 의미다. '추운 겨울이 된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는 뜻이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그린 '세한도'(歲寒圖)에도 이 구절이 적혀 있다. 또다른 유사 성어로 '추위가 닥쳐야 굳은 풀을 알 수 있다'는 '세한지경초'(歲寒知勁草), '난세에 충신을 알아본다'는 '세란식충신'(世亂識忠臣)이 있다. '먼 길을 가봐야 말의 힘을 알 수 있고'(로요지마력·路遙知馬力), '오래 사귀어봐야 인심을 알 수 있다'(일구견인심·日久見人心)는 말도 있다. '염랑세태'(炎凉世態)라고 한다. 잘 나갈 때는 구름같이 몰려들지만, 몰락할 때는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리는 게 세상 인심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게 인간세의 상사(常事)라고 하지만, 이런 세태속에서도 굳은 신념과 의지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 한줄기 위안을 받게 된다. 강현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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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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