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조선일보 지면에 담긴 여성들의 삶은 한 시대의 거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점원, 학생, 바느질 품팔이, 주모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차가운 현실 속에서도 묵묵히 버텨내며 생존과 희망을 이어갔다. 이 기록은 그들의 숨은 얼굴에 바치는 작은 경의다.
첫째는 조선의 여자 점원 이야기다. "새해도 머지 아니하니 여점원들도 손님을 영접하기에 날마다 밤마다 눈코 뜰 사이 없이 분주해진다. 10명의 판매원들은 문이 미어지도록 몰려오는 손님들에게 일일이 친절을 주장 삼아 팔고 꾸려주고 돈받고 하여야 할 것이요, 문을 닫힌 후에는 밤이 깊고 새벽이 가깝도록 문부(文簿)를 정리하는 것이다. 여자 점원이 조선에 생긴 이후에 여자도 실업계에 눈이 떴다고 하는 사람도 많았으나 말썽 많은 세상에서 받는 비평도 또한 없지 아니 하였을 것이다. 혹은 점원들이 양복이나 변변히 입고 인물이나 변변히 생긴 남자들이 들어오면 턱밑에 바싹 들어서서 생글생글 웃어가며 따라다닌다는 등, 심지어 부랑 소년들은 '오늘은 심심하니 부인 점원이 있는 상점으로 놀러나 갈까'하고, '아무개하고 말하기 참 좋지'하고 길거리로 지나가는 사람들까지도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쌓이고 쌓인 세상의 모든 말썽을 거침없이 헤치고 다만 성력(誠力) 하나로만 만인을 대적하는 여자 점원들의 열심과 정성이 헛되지 아니하여 세상에서 여점원의 지위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모(某) 상회 판매원으로 있는 어떤 여자는 말하되, '우리는 어떠한 남자든지 어떠한 여자든지 이 문 안에 들어오는 손님들에게는 참말이지 똑같은 대우를 하지마는, 보시는 양반들이 어떻게 보셨는지 미상불(未嘗不; 아닌 게 아니라) 그런 말들이 많이 돌았어요'하고 말함을 들었다." (1924년 12월 22일자)
두 번째는 시험을 준비하는 여학생의 이야기다. "요사이는 각 학교에서 남녀 학생을 물론하고 학기 시험 준비에 분망하다. 낮에는 공부가 얼마 못 되니까 전등불 밑에서 밤이 깊도록 공부를 한다. 한편에는 자전(字典), 한편에는 잡기장(노트)을 놓고 이 책을 보고 조금 적어놓고, 저 책을 보고 조금 적어놓으며 밤중까지 공부를 하다가 조금 자고 새벽만 되면 다시 선잠 깬 눈으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앉아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실로 학생에게 시험 때같이 긴장되는 때는 없다. 이전 번 시험에는 이런데 실패를 했으니 이번에는 이것을 더 준비하여야겠다. 이전 번에는 아무개에게 내가 밀렸으니 이번에는 내가 앞서야 하겠다 하여 마치 전장에 나가는 전사같이 기분이 긴장하다." (1924년 12월 23일자)
다음은 밤을 새워가며 괴로운 병자에게 한결같이 간호하는 간호부들의 이야기가 계속 된다. "바깥에는 흰 눈이 하얗게 쌓이고 요란히 다니는 전차 소리도 끊어진지 오래다. 그리 떠들던 경성 시가도 깊은 꿈속에 들고, 오직 세월을 재촉하는 시계 소리가 밤의 적막을 미미하게 깨트린다. 이와같이 남들 다 자는 밤중에 단잠을 자지 못하고 병자를 위하여 일하는 여자는 간호부이다. 세상에 남을 위로하고 남을 기쁘게 하는 것보다 더 거룩한 일이 어디 있으랴. 더욱이 자기의 행복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불쌍하고 슬픈 병자를 위로하는 이상으로 더 거룩한 일이 어디 있으랴. 남대문 밖 세부란스 병원의 간호부가 길고 긴 겨울밤에 한잠도 자지 못하고 뜨고 새며 병자를 구호할 때에, 얼굴에 혈색없이 흰 '빼드'에 누운 병자들은 아픔을 못 견디면 수없이 간호부를 찾는다. 이럴 때마다 백설같은 간호복을 입은 간호원은 그들에게 천사같이 임하게 되는 것이다. 친절한 태도, 정성스러운 간호. 이것은 모든 괴로운 병자에게 지상천국을 이루는 것이다. 세상에 집 없고 의지 없는 병자가 몇만 명이나 간호부의 다정한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간호에 외로운 눈물을 거두었으랴. 그러나 인간의 시기심은 죽음을 재촉하는 병자 사이에도 빼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간호원이 어떤 병자에게 조금만 더 간호를 해 주면 즉시 옆의 병자 사이에 불평이 일어난다 한다. 아아! 겨울밤을 새워가며 가련한 병자를 구호하는 이들에게 행복이 있을지어다! 날빛보다 더 밝은 천당 빛은 믿는 것으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아닐까? " (1924년 12월 25일자)
다음으로는 바느질 품을 파는 부인네의 이야기다. "자식도 모르고 아내도 모르고 술이나 먹고 기생집이나 다니는 것으로 유일의 사업을 삼는 남편을 위하여 자기 생활의 전부를 희생하는 가련한 여자들. 그 수가 얼마나 많으랴. 길고 긴 겨울밤을 두드려 밝혀가면서 곱고 곱게 다듬어서 정성껏 지어 입힌 두루마기는 술 파는 여자들의 기름 때가 묻고 밤중에 술 취해서 비틀거리고 돌아오다가 잘못하여 넘어지면 흙탕 구럭이가 되어 돌아옵니다. 있는 재산을 술 먹기에 다 털어 마치고 기생집에 부조(扶助)하기에 다 없애버리고는 부끄러워 집에 돌아 오지 못하고 멀리멀리 타향으로 표류하는 것이다. 자기의 죄로 자기가 고생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지마는, 눈도 코도 모르는 사나이를 부모의 명령으로 남편을 삼아서 일생 동안을 종 노릇을 하며 섬겨오다가, 나중에는, 집 한 간도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동지(冬至) 설상(雪霜)에 셋방 구석을 찾아 다니며 바느질 품팔이를 하여 겨우 생명을 보전하게 되는 것이다. 30살이 넘도록 술 먹는 남편의 뒷바라지 하기로 세월을 보내다가 박정한 남편은 가산을 탕진하고 종적까지 감춰 버린 지 벌써 오래였으나 자식들은 많고 먹을 것은 없고 할 수 없이 바느질 품이라도 파는 여자들이다. 만호장안(萬戶長安)이 모두 잠들은 고요한 겨울 밤에 광화문통 넓은 거리 외딴 구석 집에서 불도 변변히 때지 못한 추운 방에 웅크리고 앉아서 닭이 울도록 기생들의 버선을 맡아서 깁는 것이다. 한 켤레에 5전이나 될까 말까 하는 삯을 위하여 곤한 잠을 자지 못하고 바늘을 올렸다 내렸다...아! 이 무슨 비참한 일이냐." (1924년12월 27일자)
다음은 주모(酒母) 이야기다. "같은 오전에 한 잔씩 마시는 선술집도 꽃 같은 젊은 여자가 앉아서 '약주 따랐습니다' 소리를 들려주는 곳이면 더욱이 주객이 많이 모여든다. 새벽부터 밤이 깊도록 거의 잘 줄도 모르고 손님을 맞는 시내 각처 선술집에는 해가 지며 밤이 깊어 갈수록 적은 돈으로 취흥(醉興)을 돋우려고 모여드는 주객의 발자취가 잦아지게 된다. 노동자도 오고 옛 노인도 오며 일본인도 오고 양복한 신사도 모여들어 그야말로 귀천(貴賤)의 차(差)와 노소의 분별도 없이 서로 섞여 서서 어깨를 맞 부비며 대상에 쪼그리고 앉아았는 젊은 계집을 바라보며, '주모! 한 잔 붑시다' 하는 노인도 있으며, '아주머니 곱빼기 한 잔 주오' 하는 젊은이도 있고, '하이카라상 또 한 잔!'하는 일본인도 있다. 천태만상(千態萬象)으로 모여드는 각 계급의 갖은 손님들에게 농담도 받고 손목도 잡히며 주정바지도 하는 동안에 어느덧 밤은 새로 2시 3시가량이나 되고, 나이 젊은 주모의 눈에는 부모를 그리고 가정을 그리며 날로 저물어 가는 자기의 운명을 조상(弔喪)하는 애끓는 눈물이 맺어 흐르는 것이다. 이같은 주점은 종로 일대 뒷골목에 가장 많이 열려 있고, 다음으로는 각 시장 부근에 많으니 젊은 계집이 술을 따르는 선술집도 시내의 통계를 모으면 거의 100호 가량이나 된다고 한다. 술을 따르나 색주가는 아니며 분은 바르나 창부(娼婦)도 아니다. 다만 적은 돈으로 술도 취하고 배도 불리려는 시민에게 한 가지 흥취라도 돋우려고 영업삼아 나 앉았다는 특수한 직업이 곧 이 주모(酒母)이다! 밤마다! 밤마다! 바람 차고 눈 뿌리는 겨울밤에 추위에 얼어 떨고 들어오는 이에게 단잠을 못 자가며 본의 아닌 반가운 빛을 보이고 더운 술을 권하여 여러 사람의 마음과 몸을 함께 덥게 해 준다는 것이 그의 영업이다." (1924년 12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