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파면은 '탄핵 정국'이라는 불확실성을 걷어낸 사건이었다. 그러나 경제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특히 외부로부터 닥쳐오는 경제 충격파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꺼내 든 '상호관세'가 있다.
먼저 상호관세 발표 시점을 살펴보자. 미국 동부 표준시 2일 오후 4시였다. 다분히 의도적인 시각이다. 뉴욕 증시가 마감된 직후다. 아마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뉴욕 증시에선 4일(현지시간) 마감가를 기준으로 이틀 동안 시가총액 6조6000억달러(약 9600조원)가 증발했다. 제조업과 소매업, 수출입 기업, 하이테크와 로우테크, 대형주와 소형주 가릴 것 없이 거의 모든 종목들이 폭락했다. 미국 경기침체에 대한 공포도 급격히 고조됐다. 투자자들은 1년 뒤는 커녕 한 달 뒤 세계 경제가 어떤 모습일지조차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정작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대기업들은 걱정 없다"며 여유롭게 골프채를 들었다. CNN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플로리다주로 이동해 골프를 즐겼다. 그는 취임 이후 거의 매 주말 자신 소유의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 클럽'이 위치한 플로리다를 방문하고 있는데, 이날은 다른 때보다 하루 일찍 이동했다. '증시 대폭락' 폭탄을 날려 경제가 뒤흔들리는 와중에도 어김없이, 그리고 더 빠르게 골프장으로 향한 것이다.
골프 클럽에 도착하기 직전 그는 소셜미디어에 "내 정책은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부자가 될 좋은 때"라고 적었다. "대기업들은 관세가 유지될 것을 알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부자 되기 좋은 때'라는 조언까지 곁들였으니, 역시 트럼프 대통령은 친절했다.
다음으로 프리젠테이션 방법이다. 트럼프는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국가별 상호관세율을 직접 발표했다. 패널을 손에 들고 나와 시청각 자료에 호소하는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다.
그는 패널을 이용해 세계 주요국이 미국산 제품에 부과하는 평균 관세율을 조목조목 소개하면서 "미국은 오히려 관대한 태도를 보여왔다"고 주장했다. 국가·지역 이름을 순서대로 하나씩 거명하며 수치와 책정 배경 등을 간단히 설명하다가 한국은 건너뛰는 '배려심'도 보였다.
그는 상호관세율이 적힌 패널을 '소품'으로, 헬멧을 쓰고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를 '조연 배우'로 각각 내세워 상호관세의 당위성을 50여분간 역설했다. 그는 자신을 지지하는 자동차 분야 노동자 모임을 이끄는 브라이언 판네베커를 연단에 올렸다. 판네베커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100% 지지한다"며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번 관세가 '당신들(노동자)을 위한 정책'임을 강조하기 위한 철저히 계산된 연출이었다. 마치 완성도 높은 쇼처럼 '친절한 관세'를 국민에게 상영한 셈이다.
하지만 '친절함'에는 유통 기한이 있다. '우호적 호혜 관세'에 협조하지 않는 나라들엔 곧 '비우호적 상호관세'가 때려질 것이다. 결국 이 '친절한 관세'는 무역협상 테이블에 올려진 협박용 카드이자 거래 재료에 불과하다.
트럼프는 분명히 친절했다. 다만 상대가 무릎 꿇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만 그렇다. 친절은 '위장'이고, 목적은 '복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