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청라아파트의 전기차와 에어부산 기내 선반의 보조배터리에 이어서 이번에는 강진의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 끔찍한 화재가 발생했다. 리튬이온 배터리 3850개가 소실되면서 100억원이 넘는 피해가 발생했다. 31대의 소방차를 몰고 출동한 123명의 소방관이 열폭주가 시작된 화재 현장을 10시간동안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탈원전·친환경을 핑계로 태양광·풍력 설치를 서둘렀던 정부가 이제는 ESS에 올인하고 있다. 1조원이 넘는 사업비를 투입해 호남·제주에 540MW 규모의 ESS를 설치한다. 이미 2023년에는 제주의 65MW ESS에 2000억원을 쏟아부었다. 한전도 2024년에 계통안정화를 위한 ESS에 8300억원을 투자했다. ESS가 '물먹는 하마'가 돼버린 셈이다.
그런데 ESS는 실제로 우리가 사용하는 전력을 생산하는 시설이 아니다. 오히려 친환경을 강조하던 태양광·풍력 설비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시설이다. ESS는 태양광 사업자가 부담해야 하는 '출력제한'의 비용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역할도 한다. ESS의 열폭주가 낯선 일은 아니다. 2019년에는 빈번하게 발생하는 화재 때문에 ESS의 신규 설치를 중단했다. 2022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ESS 안전 강화 대책'도 역부족이다. ESS의 충전율을 제한하고, 격벽과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것이 고작이다.
1991년에 처음 개발된 리튬이온 배터리는 휴대폰·전기차·ESS 등에 다양하게 사용되는 훌륭한 첨단기술이다. 가볍고, 에너지 밀도가 높고, 충·방전 효율이 뛰어나고, 수명이 길다. 1859년에 등장한 납축전지나 1877년에 개발된 건전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뛰어난 성능은 혁명적으로 달라진 구조와 작동방식 덕분이다. 전지 내부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 대신 작고 가벼운 리튬 양이온의 물리적 이동으로 발생하는 전류를 이용한다. 충전 과정에서 음극(-극)에 모아놓은 리튬 양이온이 방전 과정에서 양극(+극)으로 이동한다. 남아도는 심야 전기를 이용해 하부댐에서 상부댐으로 퍼 올린 물로 전기를 생산하는 양수(揚水)발전소와 똑같은 원리다.
양극과 음극 사이에서 리튬 양이온의 이동을 통제하는 얇은 '분리막'이 문제다. 너무 얇아서 쉽게 손상된다. 제조 과정에서의 결함이나 사용 과정에서의 부주의로 분리막에 구멍이 생기면 감당할 수 없는 '열폭주'가 시작된다. 양수발전소의 물막이 파손으로 상부댐의 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것과 같은 사고다. 청라아파트 전기차 화재와 강진 ESS 화재가 모두 그랬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에어부산 화재 사고의 원인으로 추정한 '절연파괴'에 의한 '내부합선'도 마찬가지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화재 예방은 쉽지 않다. 생산 과정에서 품질관리를 강화하는 것이 최선이다. 휴대폰 배터리가 보조배터리보다 안전한 것도 철저한 품질관리 덕분이다. 소비자는 '싼 게 비지떡'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한다. 비싸더라도 믿을 수 있는 기업이 생산한 고품질의 배터리를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과학적 상식으로는 충전량을 낮추는 것이 최상의 예방책이다. 고용량의 충전기를 이용한 급속 충전도 경계해야 한다. 전기차·ESS·휴대폰·보조배터리에 모두 적용된다. 항공화물에 적용하는 '30% 이하 충전률' 규정을 주목해야 한다. 양수발전소의 상부댐이 비어 있으면 물막이가 깨져도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다.
보조배터리를 비닐지퍼백에 넣으라는 국토부의 기내 반입 규정은 터무니없는 억지다. '내부합선'의 가능성을 걱정한 국과수의 지적에 대한 황당한 동문서답(東問西答)이다. 더욱이 보조배터리의 USB-C 단자는 외부합선을 걱정하지 않도록 설계된 것이다. 비닐백 때문에 벌어질 공항의 혼잡·혼란도 걱정해야 한다. 아무 쓸모 없이 버려지는 엄청난 양의 비닐 지퍼백에 의한 환경파괴도 심각하다. 해묵은 규정집에서 첨단기술의 안전대책을 찾겠다는 수준의 어설픈 전문성으로는 항공철도의 안전을 제대로 챙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