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만드는데 정답없어… 세계시장에 내놓는 것이 목표
세계인들이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송혜미 서담화 대표·디자이너 [에딧서울 제공]
송혜미 서담화 대표·디자이너 [에딧서울 제공]


송혜미 서담화 대표·디자이너

성인이 된 아들이 만 세살이던 해였으니까, 서른 초반 쯤이었겠다. 아이를 귀여워하던 이웃 할머니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꽃밭을 구경하고 주인을 따라 집안에 들어섰더니 사방에 고운 원단들이 널려 있었다. 그는 한복을 짓는 침선장이라고 했다.

'한번 배워보지 않겠냐'는 소리에 솔깃해졌지만, 바늘을 한번 잡으려면 수년간 청소만 하며 수련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는 곧장 시장으로 뛰어나왔다. 전국 한복의 메카라는 서울 광장시장을 몇바퀴를 돌았지만 마음이 가는 옷은 찾기가 어려웠다. 집에서 혼자 그림을 그려가지고 다시 시장으로 가서 그대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왜, 경복궁 앞에 가면 외국인들이 뒤에 리본을 만들어 묶은 한복을 입고 다니잖아요. 그 디자인을 그때 제가 만들었어요. 사이즈에 구애없이 입을 수 있고 드레스 같기도 하니까, 그게 한복 대여 시장에서 먹힌 거에요. 한복을 제대로 배운 적은 없다 보니 그런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 특허라도 내놓을 걸(웃음)."

그렇게 한복 도매사업을 시작했다. 돌 잔치에 빌려주는 한복 같은 것을 만들어 전국의 소매점들에 팔았다. 입소문이 나고 잘되면서 나만의 브랜드를 할 만한 자신감이 생겼다. 지난 2014년 강남구 청담동에서 '서담화'라는 이름으로 가게를 열었고, 사업 수단으로 여겼던 한복 짓는 일에서 사명(使命)을 찾았다.

KBS '코리아 온 스테이지' 프로그램에서 걸그룹 '뉴진스'가 선택한 한복 무대의상으로 화제가 됐던 서담화의 송혜미(사진) 대표·디자이너의 이야기다. 그는 송소희, 송가인, 하윤주 등의 무대의상과 국내 유명 잡지들의 화보 의상으로 이름을 알렸고,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의장이 방한 당시 선물로 받았던 한복을 제작한 일까지 주목받고 있다.

"대학 전공은 시각디자인이었는데, 일러스트나 포토샵 같은 기본적인 프로그램도 못다루는 낙제생이었어요. 교수님들이 졸업도 어렵다고 걱정할 정도였으니까요. 사실 패션이 하고 싶었는데 부모님 반대로 못했던 거라서 대학원에선 패션 제작과 패션 마케팅 전공을 했고요. 이후에는 순수미술로 전공을 바꿔서 뉴욕으로 유학을 갔었는데, 영어를 못해서 적응을 못했어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니까 집에서는 결혼이나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십대 때부터 교제해 온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전업 주부로 살았다.

서담화 한복을 입고 공연 중인 걸그룹 뉴진스 [동영상 탭처]
서담화 한복을 입고 공연 중인 걸그룹 뉴진스 [동영상 탭처]


서담화는 한복에선 안감으로 쓰이는 저렴한 노방 소재의 원단을 밖으로 꺼냈다. 열과 습도에 약하고 실과 봉제 속도에도 민감한, 얇고 속이 비치는 원단을 가지고 현대적인 직선과 전통의 곡선을 구현해냈다. 나비의 날개 같기도 하고 오늘 피어난 꽃잎 같기도 한 연하고도 가벼운 옷을 입은 소녀들이 노래에 맞춰 안무를 하는 걸 보자면, 수백년 눈에 익었던 한복의 선이 낯설게 다가온다.

"서담화 오픈 이후 절대 잊지 않는 것은 소재보다 마감이 옷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거였어요. 한복을 독학으로 배우면서 주름을 다는 방식, 동정을 다는 실의 두께까지 모두 혼자 익혔어요. 힌복을 만드는 데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발전해요."

송 대표의 꿈은 우리 옷 한복을 세계 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우리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고 한복을 본 세계인들이 자유롭게 해석하고 스스로 풀어나갈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당의 저고리에는 청바지가 어울리네', '트렌치코트처럼 장옷을 걸치고 나가야지' 같은 방식으로 말이에요."

한복은 양복과는 달리 종이를 자르듯 평면 패턴으로 만들어진다. 송 대표는 이런 구조적인 실루엣이 세계시장에서 트렌드로 받아들여질 날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에 충실하며 미래를 긍정하는 것이 오늘의 한국과 'K-문화', 또 한복이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다.

이윤희기자 stel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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