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윤석열 탄핵'은 작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듣자마자 뇌리에 떠올랐던 그 이미지의 확인이었다. 사실, 계몽을 위한 계엄령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윤 전 대통령 탄핵 인용에 반대했던 지지자들은 '정치적 판결'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에 광화문으로 몰려나왔던 것이다.
헌재는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인정 된다"고 했다. 어떤 것이 헌법 수호 이익인지 구체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 고매한 헌법 정신을 일컫는다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윤 대통령을 파면하지 않으면, 그가 또 계엄령을 선포한다든가 헌법을 위반할 것이라는 우려를 염두에 둔 것인지, 아니면 헌법을 위반한 사람을 용서하면 국가 체통이 서지 않는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반면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함으로써 잃는 국가적 손실은 금세 계산된다. 조기 대선으로 당장 수천 억 원의 비용이 든다. 60일간 북새통을 치러야 한다. 그 과정에서 불거지는 혼란·분열은, 그 반대의 과정에서 일어날 혼란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대선 출마를 놓고 국민 절반이 우려하고 있는 상황을 헌재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12개 혐의로 5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가 대통령이 되면 재판 진행은 어떻게 되는지 법적 규정이 없고, 어느 헌법 기관도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헌법학자들 간에도 견해가 분분하다.
나아가 재판이 진행돼 그가 유죄가 되면 또 어떻게 되는가. 그가 받고 있는 재판 중에는 대북 불법 송금 800만 달러와 연루된 것도 있다. 유죄라면 중형이 선고될 것이고, 이는 다시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의 대북제재까지 위반한 것이 된다. 가정이지만 이런 죄를 지은 사람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있을 수 있는가.
정치적 판결 외에 윤 지지자들이 한 가닥 기대를 걸었던 부분은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엄격함이었다. 그와 관련한 부분은 세 가지다.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느냐, 소추의결서에 있던 내란죄를 뺀 것은 재의결이 필요하지 않는가, 전문법칙의 적용이 과연 법에 맞는 것인가. 이는 모두 헌재가 판단의 객체가 되는 성격을 지녔다.
우선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인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해석에서 헌재는 심사할 수 있다고 스스로 권위를 부여했다. 헌법이 비상계엄을 대통령에게 부여한 데는 고도의 통치행위로서 사법심사의 영역 밖을 상정한 것이라는 많은 헌법학자들의 주장도 있다. 같은 대통령제인 미국에서는 이를 폭넓게 인정한다. 여기에 대해 헌재는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내란죄를 빼고 심사하는 것도 정당하다는 헌재의 결정 역시 그 반대의 주장이 강력하고, 헌재가 스스로 자신에게 권위를 부여한 것이므로 낯간지러운 일이다. 피청구인 변호인이 애초 내란죄 없이 국회 의결을 했다면 부결됐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가정적 주장이며 객관적 근거가 없다고 단칼에 잘랐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 등 소추안에 가결 표를 던진 여당 의원 중에는 내란죄를 빼고 투표에 부쳤다면 달리 생각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마지막으로 헌재의 탄핵 심판절차는 형사소송법을 준용해 피의자가 전문증거에 동의하지 않으면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함에도, 그리고 헌재법 40조에 같은 명문이 있음에도 헌재는 전문증거를 채택했다. 이 역시 스스로 입법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대통령 윤석열 탄핵'을 뒤집기에는 사실 비상계엄의 충격이 너무 컸다. 그렇더라도 절차적 정당성을 허술하게 다뤄선 안 된다. 더구나 헌재가 스스로 권위를 부여하거나 입법행위까지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위다.
더 가관인 점은 좌파 재판관들의 이러한 행태에 대통령과 여당이 추천한 우파 재판관들조차 제대로 된 보충의견을 하나도 내지 않았고, 게다가 반대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헌재는 탄핵심판에서만큼은 진영으로 나뉘어진 정치재판소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기 진영과 그들의 신뢰, 그리고 그 자신의 신념까지도 저버렸다. 바람이 오기도 전에 먼저 눕는 한국 보수주의자들의 모습이다.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