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3월 정치신인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은 검사들을 대거 권력 주변으로 끌어들였다.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김홍일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이 전진 배치되었다. 대통령 주변에는 주진우 전 법률비서관, 이원모 인사비서관,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자리 잡았다. 자타공인 '검사 정권'이었다. 하지만 지난 4일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검찰 엘리트들의 국정운영 참여는 실패로 막을 내렸다.
돌이켜보면, 윤석열 정부 3년은 우리 사회의 중추였던 전문직 엘리트가 무너지는 과정이었다. 의사와 판·검사, 심지어 군인 엘리트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역시 추락했다. 오래 전에 신뢰를 잃은 정치인이나 기자들은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전문직 엘리트들에 대한 신뢰 붕괴가 사회의 도덕적 질서 상실로 이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몰락한 직접적 계기는 지난해 12월 3일 계엄령 선포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그 징후는 지난해 22대 총선을 앞두고 단행된 의대정원 확대에서 나타났다. 지난해 3월 20일 윤석열 정부는 의대정원을 2000명으로 늘리기로 하고 대학별 배정 결과를 발표했다. 총선을 20일 앞둔 시점이라 여당 표를 깎아먹는다는 지적에도 정부는 강행했다. 이로 인해 대한전공의협의회, 대한의사협회 등이 반발, 지지를 철회하면서 윤석열 정부는 4월 총선에서 크게 패했다.
의대정원 확대 필요성에는 공감했기에 규모와 시기를 조금 유연하게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컸던 조치였다. 그럼에도 정부 정책에 맞선 대학병원 의사들과 전공의, 의대 학생들의 집단행동은 어떤 경우에도 합리화할 수 없다.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스스로를 '의사 선생님'에서 '의료 기술자'로 격하시켰다. 의사라는 사회 엘리트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싸늘해졌다. 한국사회에서 의사는 이미 존경받는 직업이 아니라, 돈을 잘 버는 직업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잇따른 국무의원 탄핵소추와 계엄령의 후폭풍으로 헌재를 비롯한 법원 판결에 대한 국민 관심도 늘어났다. 하지만 잇따라 드러난 재판관들의 개인적 일탈과 함께 특정 이념에 집착하는 모습이 드러났다. 그러면서 특정 모임 출신 판사들의 이념적·정파적 판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실제로 한덕수 총리,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에 대한 판단에서는 법리는 이념적 판단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재판에 대한 법원 판결 역시 사법 불신을 키웠다.
12월 3일 계엄령은 군 엘리트들의 실태를 드러내는 계기였다.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문상호 정보사령관 등은 권력을 무분별하게 추종했다. 곽종근 특수전사령관은 야당 의원의 유튜브에 출연, 눈물을 보이며 증언을 했다. 한참 뒤에는 '양심선언을 강요받았다'는 그의 전화통화 음성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들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30년 이상 군 엘리트로 성장, '별'이 된 사람들이다. 하지만 단호한 군인정신과 원칙, 희생보다는 더 큰 권력에 종속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일부의 이탈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장군들이 연루되었다.
전문직 엘리트 사회의 붕괴는 다원화된 사회로의 전이를 돕는다는 장점도 있다. 의사-판·검사-군 장성 등이 우리사회 최고의 성공이 아니다. 오히려 기업인들이 시장의 신뢰를 의식하면서 더 도덕적이고, 능력 있는 존재로 성장해가고 있다. 그럼에도 전문성을 갖춘 엘리트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중추를 담당하기에 그들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전문직 엘리트가 무너진 공간을 '황금 숭배'가 빠르게 대체해가고 있다. 평균수명이 연장되면서 대부분 국민들은 은퇴 후 20~30년을 걱정한다. 공동체가 연금 등으로 노후를 책임지지 못하면서 개인들은 자력도생을 고민한다. 엘리트도 마찬가지다. 결국 부자는 더 큰 부자를 꿈꾸고, 작은 권력은 더 큰 권력에 의존하려고 한다.
직업윤리, 도덕이나 가치가 과거를 지칭하는 낭만적 용어로 전락하고 있다. 70년 전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라이트 밀스는 '파워 엘리트'(The Power Elite)라는 책에서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은 돈과 그것으로 구입할 수 있는 사물의 가치"라며 "부자들의 삶의 기준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면서 사람에 대한 평가기준이 모두 돈과 관련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 한국 사회에 딱 맞는 분석이다.